지난해부터 아버지께서는 여수교당에서 근무하는 큰언니(여수교당 보좌교무)에게 가서 봉사를 하며 살고 계신다. 얼마 전 치아치료차 사가인 전주에 다녀가시며 큰언니에게 기차를 탔다고 음성메시지를 보내셨다.

가족 단톡방에 음성메시지와 함께 기차표 사진이 올라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주 12시 58분 출발. 여수 2시 23분 도착.'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차표를 물끄러미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죽고 나는 것도 이와 같을까? 열반행 기차표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대개 기차를 타는 순서는 이러하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일정에 맞게 표를 구입한다. 그리고 표를 확인 후 그에 맞는 기차가 오면 선택한 좌석에 앉아 가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린다. 이 때 잠을 자거나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가 내릴 역을 놓치면 안 된다. 기차 안에서 정신을 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열반에 들어 천도를 받기 위해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가다가 정신을 놓거나 다른 곳에 착이 생겨 한눈을 팔면 전도 몽상이 되어 악도에 떨어질 수도 있고 결국 천도를 받지 못하게 된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발달해서 손바닥 안에서 목적지와 시간을 쉽게 검색할 수 있다. 나의 일정에 맞춰 선택만 하면 된다. 생사를 자유로 한다는 것 또한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 나는 한 번씩 잠을 잘 때면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 어떻게 되지? 신은경이라는 존재는 사라지는 건가? 두려움은 나의 미래가 불분명하고 불안할 때 온다. 죽은 후의 세계는 아무도 알지 못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생사는 비하건대 눈을 떳다 감았다 하는 것과도 같고, 숨을 들이 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것과도 같고, 잠이 들었다 깼다 하는 것과도 같나니, 그 조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치는 같은 바로서 생사가 원래 둘이 아니요 생멸이 원래 없는지라, 깨친 사람은 이를 변화로 알고 깨치지 못한 사람은 이를 생사라 하나니라." (<대종경> 천도품 8장) 죽고 나는 것은 우리가 전주에서 여수를 가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머나먼 여정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다녀오는 것이다.

생사는 생멸이 아닌 거래이기 때문에 오고가는 데 형상에 변화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죽음에 두려운 것은 다음 생을 모르고 설사 안다할지라도 다음 생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기차표도 없이 그냥 기차에 오르는 것과 같다. 때문에 준비가 필요하다.

기차표를 사려면 돈이 필요하듯이 우리는 복을 장만하여야 한다. 대종사의 법을 공부하고 실천하여 무형의 복을 많이 짓게 되면 적금처럼 쌓이고 쌓여서 생사를 자유 할 열반행 기차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기차표를 얻는 순간 죽음은 더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닌 새로운 곳을 향한 설레임이 될 수 있다.

열반행 기차표를 살 준비가 되었는가. 각자가 무량한 복을 많이 지어서 생사 거래에 자유 할 수 있는 열반행 기차표를 하나 씩 장만하기를 바란다.

/광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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