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일 도무/ 사회복지법인 삼동회 법인사무처

일원상의 수행은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하는 동시에 수행의 표본을 삼아서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각자의 마음을 알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양성하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사용하자는 것이 곧 일원상의 수행이니라'고 했다.

나는 그동안 법문을 문자로만 익히고 배워서 말을 하고 귀로 들어서 전했다. 마음도 제대로 해결해서 알지도 못한 채 마음공부를 한다고 공부인의 흉내를 내며 살았다. 법문에서 밝혀준 일원상의 수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9년 전에서야 비로소 '그 자리' '한 물건' 등으로 뭉뚱그려 표현하는 단어들이 얼마나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일찍이 의두요목이나 성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지만 법문을 접할 때마다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아 들고 놓기를 반복하면서도 한없이 답답하기만 했다. 한때는 '전서를 온통 다 외우면 그 자리를 해결해서 알 수 있을 것인가'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다행이 한 마음으로 답답해하며 애태웠던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것 같다. 한 생각으로 온통 골똘해져 있던 어느 날 문득 '이 자리인가? 이것이지? 아 그렇구나!' 하면서 시원해지는 때가 있었다.

그 후에서야 길 없는 길이라 해도 알아듣고 뿌리 없는 나무 한 그루라 해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가 속 깊은 마음공부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른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도 없는 '그 자리', 본래 없어 챙길 것도 없는 '그 한 물건'을 챙기고 또 챙겨서 수백 생 수천 생 수만 생을 닦아간다면 필경 성불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스승님들과의 문답을 통해서 끊임없이 그 자리를 확인해가고 법문을 통해서 다시 챙겨가고 있다.

나는 말 재주가 없어서 말로 표현을 잘 못한다. 글 쓰는 재주도 없어서 글로도 잘 써내지도 못한다. 하지만 홀로 든든하고 홀로 기쁘고 홀로 감사한 마음에 미소를 머금을 때가 많다. 행주좌와어묵동정 간에 없는 가운데 있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환희 보는 그 자리를 끊임없이 챙겨가고 힘을 쌓아가는 재미가 있다. 더 나아가 그 자리를 알아차려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큰일이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닌 것 같다.

육근을 사용할 때,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그 자리 그대로여야 한다. 그렇게 되어질 때까지 닦고 양성해 가는 것이 숙제이다. 육근을 통해 와지는 찰나 찰나의 순역 경계 하나하나를 매 순간 알아차리고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 생활 속에서 크게 요란해질 때 수십 번의 염불과 독경과 기도로 해결한 적도 있지만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절절매며 끌려다닐 때도 많다.

이럴 때마다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인가! 이때, 이 순간에, 그 자리 잘 활용하자고 공부 하는 것 아닌가!'하며 없는 그 자리에 바탕한 온전한 한 생각을 챙겨 일어나는 마음들과 아닌 마음들을 턱 내려놓는다. 그렇게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한다.

그렇게 잘 되어질 때 홀로 기쁘고 통쾌하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그 자리를 잘 보고 잘 챙기고 잘 길러서 잘 가지고 다니다가 잘 사용해야겠다. 힘 미치는 대로 교단의 크고 작은 일에 합심합력하며 대종사께 보은하고 교단과 소중한 인연과 자신에게 감사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챙겨가며 살고 싶다.

속 깊은 마음공부를 알뜰히 하는 전무출신! 대종사님과 선진님 그리고 스승님에게 누가 되지 않는 삶을 사는 전무출신! 교화를 잘하는 전무출신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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