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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십상 6. 신묘생 박처화 만국만민 다 구제하고
소태산 십상 6. 신묘생 박처화 만국만민 다 구제하고
  • 박청천 교무
  • 승인 2017.06.23
  • 호수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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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청천 교무/교화훈련부
- 19세~23세 5년간 주력수행 독공으로 채무 청산해

- 24세 우두커니병 적과 창 '이 일을 어찌할꼬' 심사미정

- 25세 연화봉수양 단전주선으로 병고해소, 입정돌망



박처화는 16세 한가위 이래 19세 8월까지 만 3년간 도사 찾아 불원천리 줄기차게 내왕했다. 상제 화천 이후 삼밭재 삿갓집에서 독자적인 수행에 들어갔다. 이때 떠오른 주문은 태을주도 아니었고 시천주도 아니었다. 일타동공일타래 이타동공이타래… 전연 새로운 타입의 주문이었다.

시방신접기접기 우주신적기적기는 타리 장사 갈 때 망망대해에서 얻은 주문이다. 자나 깨나 곡(哭)을 하나 장사를 하나 한시도 주문을 놓지 않은 주력수행(呪力修行) 공덕으로 일제침탈과 동시에 부친상의 시련을 극복하고, 악질지주 조 박사의 빚 독촉을 타리 민어파시 장사로 딱 빚 갚을 만큼만 돈을 벌어 채무를 청산했다. 타리 파시에서 얻은 건 일심독공에 대한 자신감과 무한 심량확대 체험, 그리고 하늘에 뻗지르는 구도의지가 더 강고해졌다는 점이다.
▲ 소태산이 법성포 강에 가기위해 장꾼들과 동행하다 하루종일 입정에 들었다는 선진포 나루터.
기한에 발도심

다시 빈털터리 간고한 생활로 돌아왔다. 처화의 구도과정 중 가장 고난의 시기가 24세이다. 공부 방향을 잡지 못해 우두커니 앉아 "이 일을 어찌 할꼬(心事未定)" 망연자실 근심걱정으로 360혈은 종창으로 편만, 복부는 산달 임박한 부인처럼 팽만, 엄동설한 차디찬 방에 부황 뜬 얼굴로 상투를 틀지 않아 산발, 포대 모양 앉아 손발이 얼어터지고 수염은 입김에 얼음 덩어리가 되었다. 이때의 정황을 소태산은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그러고 있을 때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지나가는 새도 가까이 안 지나갔다. 곽문범이라는 사람이 한 번씩 와 양식 됫박이나 갖다주고 갔다."

천정리 사는 곽문범이라는 선비가 양식 자루를 두루마기 자락에 감춰왔다. 하루는 불갑사 불목하니를 데려와 해불암의 선승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 선승은 이전에 성섭 형의 소개로 선운사 갔을 때 만난 도솔암 근처 토굴의 수행승이었다. 그를 통해 단전주 선법을 알게 되고 고창 연화봉에 가서 용맹정진하게 된다. 연화봉 초당은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돛드래미 김성섭이 주선했다. 처화의 연화봉 적공을 지켜본 김성섭은 얼마나 기대를 걸었든지 타작이 끝나자 바로 보리 한 가마를 노루목에 보냈을 정도였다.

노루목 오두막의 식구가 넷이다. 바랭이네는 남의 품앗이로 밭을 매주고 양식을 얻어 처사양반을 공궤하고 자기 두 아들을 거두었다. 장마라도 지고 일거리가 없을 때는 나물죽으로 연명하다가 그것도 떨어지면 굶고 지내기가 일쑤였다. 김형오는 <대종사 일사>에서 노루목 정황을 이렇게 서술하였다.

몇 해를 개초하지 않아 지붕은 썩을 대로 썩어 서까래가 총부리 겨누듯 나오고 지붕 위에선 백동아 가시꽃이 허옇게 피고, 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리면 방안에는 간장국 같은 시커먼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박 처사는 무릎을 적셔도 모르고 앉아 있었다. 방에는 작은 못, 부엌에는 큰 못, 바가지로 퍼내고 걸레로 훔쳐내고 하는 동안에 비가 점차 개었다.

바랭이네는 바구니를 끼고 산비탈로 언덕으로 나물을 캐러 나섰다. 2, 3일 동안 굶은 데다가 물방죽이 된 방안을 훔쳐내노라 잠을 설쳐 심신은 기진맥진, 나물을 캐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평소 바랭이네에게 목석같은 사람 믿고 왜 사느냐며 같이 살자고 추근대던 정보원이라는 보부상이 지나가다 보고 양식 두 되를 구할 만한 대금을 내놓고 갔다.

또 어느 때 바랭이네는 곡식 자루를 들고 재 너머 마을로 양식을 구하러가다가 마을어구에서 하혈하며 실신했다. 동네사람들이 달려와 양식을 구해 주고 집에 돌아가도록 보살펴 주었다. 이러저러한 인연들의 보살핌은 그저 나온 것이 아니었다. 흙구덩이터와 노루목에서 주막할 때 공술 공밥 먹은 은덕이었다.


연화봉 수양부터 입정 시작

처화의 입정삼매(入定三昧)는 25세 고창 연화봉 수양에서 본격화된다. 봄이 가고 녹음 짙은 계절이 와도 처음 올 때 입고 왔던 솜옷 그대로 깊은 정에 들어 더운 줄도 모르고 3개월을 지냈다.

길룡리 노루목에 돌아와 오두막 골방에서 면벽하고 입정해 있으면 바랭이네가 물었다.
"처사님 처사님, 어쩔라고 그래요, 어쩔라고 그래요. 원님되고 싶어 그래요?"
"원님이 대수여. 제갈공명 같은 선생이 되야제"

박 처사가 바랭이네에게 당부하였다.
"조석으로 찬물로 목욕재계하고 축원을 올려라"

이후로 바랭이네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침저녁으로 목욕재계하고 노루목 샘터 바위에 시루에 정화수 올려놓고 천지신명께 축원하였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부디 우리 처사양반 둘러싼 사마 잡귀 다 물리치고 병을 낫게 해주소사.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리 처사 양반 발복하여 고을 원님되게 하소사"
축원 내용을 듣고 박 처사는 내용을 바꿔 발원토록 하였다.

"그까짓 고을 원님이 뭔가. 공 드릴라면 신묘생 박처화 만국 만민 다 구제하고 일체 생령 제도하는 성자되도록 해달라고 비소."
▲ 현재 선진포 나루터는 사라지고 비석만 표시해뒀다.
입정 일화 3건

○ 처화, 어느 때는 혹 분별이 있는 듯하다가 도로 혼돈해지고 혹 기억이 나타나는 듯하다가 도리어 망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어느 날 아침에는 정신이 맑아져 법성포 장에 간다며 장꾼들과 동행하다 선진포에서 문득 서서 진종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해질녘 장꾼들이 장을 보고 돌아오다가 이를 보고 노루목에 전해 주어 처사양반을 모셔왔다.

○ 수양처인 귀영바위 굴로 가다가 전에 살던 흙구덩이 주막 앞(현 성지학교 정문 20m 앞)에서 소변을 보다가 정에 들어 아랫도리를 내린 채 우뚝 서서 한나절을 폭양에 얼굴이 타는지도 모르고 망연히 서 있었던 일도 있었다.

○ 어느 날 겨우 얻은 밥 한 끼도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바랭이네가 외가(金聖西)에 가 양식 한 되를 얻어와 조반을 준비하여 상을 올리고, 상을 물리기 전에 일이 바쁜 것을 생각하여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정오가 지난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처화는 밥을 비빈 채 수저를 놓고 묵연히 앉아 있었다. 온 방안의 파리가 모여들어 밥과 반찬을 빨아먹고 있었다. 바랭이네는 탄식을 하고 가까이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제야 처화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아침 식사를 하다 말고 오전 나절을 망연히 정에 들었던 것이다.

처화의 입정은 하루에도 밤과 낮으로 한 달에도 선후 보름으로 밝았다 어두웠다 하는 변동이 생겼다. 영문이 열릴 때에는 천하에 모를 일과 못할 일이 없이 자신이 있다가도 닫히고 보면 제 몸 하나도 어찌할 방략이 없어 무엇에 홀린 듯하였다. 이런 경우 그는 홀린 것 같은 상태에 대해 성성한 정신을 잃지 않고 초롱초롱한 의식 하나를 붙잡았다. 이때의 박 처사의 공부심은 매우 용장하여 옳고 그름, 삿됨과 바름, 분별이 분명하여 그를 가리고 퇴치하는 데 빈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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