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상 작가/북일교당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산악에 있는 몬드라곤은 인구 삼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다. 1940년대 몬드라곤은 폐허로 변했고 죽음의 도시가 되었다.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로 참전했던 몬드라곤 사람들 중에서 수천 명이 포로가 되었고 또 상당한 숫자가 처형당했다. 1941년 2월, '호세'라는 젊은 보좌신부가 몬드라곤에 도착했다. 가톨릭 신부로서 그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영혼 구원에 사목의 중점을 둬야만 했었다. 개인의 영혼 구원은 당시 스페인 가톨릭계의 사목적 유행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경제적으로 죽음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개인의 영혼 구원은 종교적 말장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영혼 구원의 전제는 개인 영혼의 타락에 있다. 개인의 타락 이전에 그 사회가 전반적으로 타락해 있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그는 몬드라곤의 빈곤과 실업, 프랑코 독재의 절망적인 현실을 직시했다.

그리고 행동에 옮겼다. 제일 먼저 축구팀을 만들었고 기술학교를 설립했다. 마침내 1956년 기술학교 졸업생 다섯 명이 노동자 이십삼 명과 힘을 합쳐 석유난로공장을 설립했다. 이것이 몬드라곤의 첫 협동조합 '울고(ULGOR)'였다. 그 후 몬드라곤은 111개 협동조합, 120개 자회사 등 총 255개 사업체를 거느린 기업집단의 도시로 성장했다. '스페인 매출 순위 8위, 고용창출 3위' '오십 년간 노동자 소유의 원칙 등 자본주의 기업과의 차별성 고수' '지난 오십 년간 단 한 명도 해고자 없음' '스페인 정부보다 훨씬 풍부한 사회보장체계 형성' 등 협동조합의 신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1910년대 조선 전라남도 영광의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 소태산이 대각했다. 대각 이후 소태산은 협동조합인 저축조합을 설립했다. 우리 역사에서 돈오(頓悟)를 이룬 고승들은 꽤 많았다. 그들 중 일부는 돈오를 중생과 나누었으나 대부분은 깊은 산속에서 가르침만 내려주었다. 제도와 권력이 극단적으로 가난과 굶주림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중생에게 자성을 깨우치라고 가르치는 것은 위선이고 가짜다. 소태산은 이 점을 분명하게 깨닫고 저축조합을 만든 이후에 곧장 간척지를 만드는 방언사업에 아홉 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몸소 나섰다.

소태산은 손수 삽을 잡고 땅을 일구었다. 스스로 물질을 개벽하고자 나선 것이다.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물질은 정신의 하위 개념이 아니다.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은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 방언공사가 물질개벽이라면 혈인기도는 정신개벽이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그것의 개벽은 마음공부를 통해 이루어진다. 언어의 화려한 수사(修辭)를 중시하는 마음공부가 아니라 노동을 통해 육체가 정직한 땀을 흘리는 마음공부. 언어의 수사 위에 허상으로 존재하는 허망의 마음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 위에 실상으로 존재하는 마음. 여기에 소태산의 가르침이 있다고 본다.

종교가 깊은 산으로 가지 않고 스스로 산업과 생산에 나섰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원불교는 물질을 개벽하는, 스스로 대지를 창조했던 종교로 그 첫 걸음을 떼었던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방언공사와 혈인기도가 필요한 '현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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