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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마음 상담현장. 우울감 호소하는 어르신의 모래상자
둥근마음 상담현장. 우울감 호소하는 어르신의 모래상자
  • 정현정 교도
  • 승인 2017.06.23
  • 호수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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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정 교도/원남교당
▲ 정현정 교도/원남교당

 매년 지역의 독거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우울증 예방을 위한 집단모래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보통 70세 이상 80세 중반 어르신까지 5명이 주1회 참여하고, 총 12주의 기간을 거친다. 이 분들에게는 지나온 과거 회상을 통한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여행을 떠나는 시간이다.

내가 만난 그 분들의 이야기는 일제시대, 6.25전쟁, 4.19혁명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한복판에 시대적 아픔이 삶에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그 시절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전쟁 통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부모와 형제는 어떻게 잃었는지… 등등 역사의 비극적인 단면들이 그대로 담겨있다.

보통은 너무 긴 시간이 흘러서인지 가슴 깊이 패어있는 상처와 아픈 감정들이 마음 깊이 어디엔가 꼭꼭 숨겨져 있었다. 그러다 이야기가 한번 나오기 시작하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그 때는 시체가…", "총탄이 벽에 튕겨나갔어", "학생들이 피를 많이 흘렸어" 등 당신들이 그 오랜 세월동안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체험들을 쏟아낸다. 무섭고 험악한 그 시대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치유의 과정으로, 서로의 상처를 조심스레 꺼내고 나누며 나아가는 것이다.

이분들의 경우 대부분의 현실의 삶 역시 무겁고 고단하다. 사업의 실패로 가족이 오갈 데가 없게 되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자식을 잃었거나, 가족구성원 누구도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장애세대인 경우가 많다. 내 입장에서도 이런 비극이 계속되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모래상자 프로그램은 내면에 표현된 모래상자에 피규어 등으로 자신의 체험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이다. 모래만 담겨진 텅 비어진 공간 위에 전쟁과 충격적 사건,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 가난과 고된 노동, 과거 못다 이룬 꿈, 아직도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구 등이 표현되고, 같은 시기를 겪어왔지만 사람마다 각양각색으로 다르게 표현된다. 이렇게 모임이 진행될수록 스스로 어둠에서 나를 찾아가는 빛을 향해 한 분 한 분 자신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모래상자 프로그램은 각자 해결해야 할 주제들과 부정적인 감정들이 표출되는 것에도 의의가 있다. 나아가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게 되고 함께 참여한 분들과 아픔과 슬픔을 나누고 보듬을 수 있어 서로 위로 받고 힘을 얻게 되는 시간을 만들어 간다. 이쯤 되면 우울감으로 어둡기만 했던 어르신의 얼굴에도 웃음을 발견하게 되고, 여유와 허용적인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서로 친밀한 사이가 되어 모임의 즐거움이나 보람 등을 이야기한다.

얼마 전에는 사별한 남편과 결혼식을 못해 그 한을 40년 동안 안고 살아온 분을 만났다. 만날 때마다 이 이야기를 반복했고, 모래상자에도 신랑이나 신부 중 한 자리가 꼭 비어있곤 했다. 마지막 모임이 진행되던 날, 함께 프로그램을 하던 다른 분들이 모래상자에 이 분의 결혼식을 만들고, 예쁜 신부 옷을 입혀 꾸며주셨다. 미리 계획하지도 않았지만 모두의 마음이 모아져 그 분의 소원을 함께 풀어주었던 것이다. 이날 그 분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함께 감동했다.

이렇게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는 독거어르신의 건강한 생활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은 매년 진행되고 있다. 특히 노년의 우울증 예방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 매회 만나게 되는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와 치유의 과정들은 어르신들뿐 아니라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뜻 깊은 시간이다. 이 때문에 더욱 공부하는 마음으로 임하게 되며, 하루하루 보람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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