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체제, 시민역량이 온전한 나라 만든다"

인터뷰 전문(全文)

성공회대학교는 작지만 특성화가 잘된 학교로 유명하다.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진보진영의 이론적 토대는 물론 교수들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로 퇴행적 민주주의에 맞서 왔다. 특히 NGO 대학원은 우리사회 민주적인 시민, 깨어있는 시민들을 키워냈고, 이들의 연대와 조직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가치를 탄탄한 시민운동으로 꽃 피워냈다.

대학 연구실에서 만난 김동춘(57) 성공회대 NGO 대학원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분단에 있기 때문에 남북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 적어도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평화체제를 정착시켜 온전한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특정 상위계층에 장악된 입법부도 위기의 주범이라고 했다. 한국을 아직 완성되지 못한 나라라고 규정한 그는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이 침해받고 있는 주권회복과 외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고, 민주주의 퇴행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학자로 정치사회학, 계층사회학을 전공한 그를 만나 더 나은 우리사회를 위한 진단과 종교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에는 이공현 은덕문화원장이 함께했다.

▲ 김동춘 교수는 퇴행의 민주주의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평화체제 정착과 시민역량이 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권교체로 새 정부가 탄생했는데,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개혁 과제를 꼽는다면.

"우선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과 탄핵을 통해 탄생한 정부임을 잊지 말고, 보수 정권이 망가뜨린 국가권력의 남용, 이 과정에서 나온 정경유착을 바로 잡아야 한다. 적폐청산이라는 말보다는 공정한 공권력 집행의 국가 정상화라는 말이 어울린다. 공권력 남용을 인한 각종의 피해자, 가해자, 수혜자들에 대한 진상규명이 요청되고, 일정한 정도의 적절한 단죄가 뒤따라야 한다. 이것은 국민들이 실제로 가장 원하는 것이다. 또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의해 굴절된 민주정신 회복과 우리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 국민들은 경제적인 고통과 불평등에 아파하고 있어서, 청년실업, 정경유착 해체, 재벌개혁, 경제적 약자 보호, 갑을관계 청산 등 현실적으로 응급처방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두 가지(불평등, 양극화)는 서로 관계가 있어서 문재인 정부 허니문인 100일 안에 국민들 피부에 와 닿는 개혁을 해야 한다. 허니문 기간에는 국민의 지지가 가장 높을 때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전 정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때는 국민들이 떠날 것이다. 정의도 좋은 데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는 정의는 국민을 돌아서게 만든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정권 초기의 개혁 방향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 진보와 보수를 넘어 한국인의 역사적 주체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일단 근현대 100년의 역사를 보면 한국인은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를 경험했다. 여기에서 오는 피해의식과 상처가 너무 크고, 이 역사 속에서 서로에 대한 관용성은 굉장히 떨어졌다고 본다. 사람들은 조그만한 일에도 극단에 치닫기도 한다.
또한 권력자나 많이 가진 자에 대한 불신과 트라우마가 팽배하다. 하지만 현실 긍정적이고 실용적인 태도도 찾을 수 있는데, 한국인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려는 강한 의식을 지녔다. 이것이 경제적인 기적을 이룬 동력이다. 한국인은 이 양쪽 측면이 있고, 기질적으로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사람들과 제일 비슷하다. 남유럽인들과 흡사한 측면이 있는데, 이것은 좋다 나쁘다의 차원이 아니고 문화적 원형질이 그렇다는 뜻이다."

-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나는 비판적인 시각이 많은 편이다. 대한민국은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나라로, 하프(half) 즉, 반(半)국가라고 본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국가다. 분단국가로서가 아니라 국민이 충분한 주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고, 국가 역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해서다. 세월호 참사는 단적인 예다. 물론 지정학적 위치에서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의 영향도 있지만 완전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분단극복과 평화가 정착돼야 한다.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북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등 분단을 빌미로 한 외세의 개입이 없도록 해야 한다. 분단이 고착화될수록 외세가 개입할 명분과 여지가 많이 생긴다. 그래서 평화체제 전환은 반국가을 극복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대내적으로도 평화는 중요하다. 평화체제가 안착되면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담론도 사라지게 된다. 시민권과 주권이 보장되고, 분단의 명분도 상실되는 것이다. 내부적으로 보면 사회의 소수, 지방, 여성 등 마이너리티의 생명과 권익이 보장돼야 온전한 국가가 된다. 대외적 환경이 개선되지 않더라도 시민의 역량이 커지면 주권도 따라서 커진다. 남성과 여성, 중앙과 지방, 주류와 비주류, 사용자와 노동자 등 갑을관계에서 약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온전한 국가로 갈 수 있다. 그만큼 약자들이 피해를 입을 확률이 적어진다. 현재 한국은 반국가에서 온전한 국가로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 보수정권 9년 동안 퇴행의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어디서 왔으며, 진전을 위한 민주주의 사회화는 어떻게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한국 민주주의 위기는 냉전체제, 분단에서 크게 기인한다. 이는 모든 것을 적과 나, 생각이 다르면 빨갱이로 취급하게 만들었다. 이 냉전체제에서는 사상과 표현, 조직의 자유가 확보되지 않았다. 또 선출된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모두 상위1% 안의 부자들이다. 평균 재산이 20억 원이 넘는다. 민주주의 위기는 이런 상위층들이 입법권을 가지는 데서 비롯됐다. 국민의 대표라고 하지만 사회적 약자, 온전한 민의를 대변할 수 없는 구조다.

세 번째는 과도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지만 자본주의는 1원 1표다. 미디어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광고를 대기업에 의존하기 때문에 대기업에 맞는 왜곡된 의사소통을 요구받고 있다. 약자들의 억울함이 자본에 의해 왜곡, 굴절되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이 굴절되니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의사표현이 안 된다. 지난 9년 동안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외치며 뉴타운, 4대강 사업을 했다. 세금 40조를 쏟아 부어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것은 언론들이 자본에 포섭됐기 때문이다. 행정수도의 이전 문제도 마찬가지다. 서울 집값이 떨어질까 봐 지방으로의 이전을 반대한 것이다. 서울 이기주의로 인해 지방은 준 식민지화되고 있다."

- 민주주의 사회화는 어떻게 돼야 할까.

 "결국 제도, 법, 의식의 개혁인데, 민주주의 위기는 대통령제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권력자를 충분히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었다면 이런 상황은 안 됐을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같은 사람이 역사에 등장하지 않기 위해서는 헌법 중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돼야 하고, 내부 공익적(기본권, 양심 등) 제보자들이 처벌받지 않도록 하는 법적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또 선출된 권력에 대한 소환제도가 활성화되고, 고위 관료들에 대한 감시는 한층 더 강화돼야 한다. 우리나라 1년 예산 400조원에 대한 예산 편성권은 기획재정부 관료에게 있다. 관료들이 예산권을 독점하고 있다. 예산 집행에 대한 감시 기능이 부실하다. 정보 권력기관인 국정원의 예산도 마찬가지다.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무슨 활동을 하는지를 적어도 국회의원들은 알아야 한다. 또 검찰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지방 검사장은 그 지역 국민들이 뽑을 수 있도록 해야 견제가 가능하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동네, 지역에서 활발한 시민,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정계에 진출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맞다. 누구나 부담 없이 정당원이 되고, 지역의 구의원, 시의원들을 만나 쟁점에 대해 언제든지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밑으로부터 정치가 활성화되면 민주주의 사회화는 이뤄질 것이다."
 
- 문재인 정부에서 시민운동의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하나.

 "문재인 정부에서 시민운동은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정치를 했던 사람들도 시민운동으로 내려올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감시와 견제의 시민운동은 고유한 목적에 맞게 남아줬으면 한다. 물론 민관(民官)의 거버넌스(협치)는 활발하게 전개돼야 한다. 시민교육부터 민과 관이 함께 가야 할 분야에서는 민이 주도하고, 관이 지원하는 형태로 가야 경직된 관료사회를 보완할 수 있다. 정부는 시민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경계해야 부분은 시민운동의 어용단체화로 관에서 하는 일을 무조건 지지해서는 안 된다. 권력의 속성은 모든 것을 독점하려하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감시와 견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지난 정권에서는 국가가 관변 우익단체들을 지원하면서 공익적인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시민단체 중에서도 지난 9년 동안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로를 모색한 단체들은 살아남았다. 현재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마을 만들기 사업의 경우, 자생력이 없이 지원을 받은 시민단체들이 관의 지원이 끊기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 언론뿐 아니라 시민운동에 직접 뛰면서 세상을 바꿔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사단법인 다른백년 연구원장을 맡고 있는데 다른백년은 어떤 곳인가.

"다른백년은 한국의 새로운 민간싱크탱크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동안 민간싱크탱크 설립 필요성은 각계에서 제기돼 왔고, 시민들의 감시와 견제 기능을 넘어선 보다 전문적인 영역이 요청됐다. 한국사회가 분야별로 더욱 다양해지고, 전문화되면서 재단이나 법인설립을 통한 민간싱크탱크가 필요해졌다. 다른백년은 지식인 개인의 의견보다는 다수의 전문가들이 모여 첨예한 사안에 대해 연구하고 분석, 결집해 정책적인 대안을 만들 것이다. 한국에서는 민간싱크탱크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전문 연구소가 필요한 이유는 정부가 내놓는 통계가 정권의 입김에 따라 달라져 나오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노동부와 민간 한국노동문제연구소에서 나온 통계 수치가 다르다. 정부가 자기들이 유리한 쪽으로 통계를 내다보니 국민들은 이 통계를 온전히 믿을 수 없다. 국가의 정책도 임기응변으로 나오면서 민간의 싱크탱크가 더욱 필요해졌다. 어쩌면 정부와 민간 싱크탱크가 서로 경쟁하거나 협력할 때 나라의 경쟁력은 확연히 높아질 것이다. 국가의 근시안적 정책은 국민의 세금과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세금낭비의 전형적인 사례다. 정확한 진단 없이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은 원래 기업을 하셨던 분인데, 퇴직금과 주식을 연구소 씨앗기금으로 기부했다. 사회 각계층들이 모여서 비전과 정책을 만들지만, 연구자들이 주요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 소태산 대종사는 일제강점기 말엽에 '금강이 현세계하니 조선이 갱조선이라', '조선은 장차 어변성룡이 된다'고 예언했다. 말씀 당시 조선은 남북이 갈라지지 않은 온전한 조선이었다. 온전한 조선을 위한 한국사회 내지 종교계의 역할과 노력이 있다면.

"우리사회는 도덕적으로 무너진 사회다. 물질개벽은 이미 됐고, 정신은 예전 그 상태이거나 더 타락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사회를 이끄는 영성이 없는 상황으로 정신개벽은 우리 사회의 너무나 중요한 과제가 됐다. 사람과 사람 관계가 도구화됐고, 같은 약자끼리 서로를 원망하고 미워하며 상대방에 대한 관용의 여유가 없어서 한번 건드리면 폭발할 지경에 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원불교의 정신개벽운동은 중요하고, 일제 식민지 좌절과 절망적인 시기에 국민들에게 민족적 자존감과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 100%까지는 아니어도 살만한 사회가 됐지만 세태는 여전히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면서 정신이 황폐화 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이룩한 한국인들의 물질적 성취는 세계적으로 대단한 업적이지만, 다만 그 과정 속에서 얻은 피해의식과 상처들을 이제는 너그러움과 자신감 등 정신적인 내용으로 채워갔으면 좋겠다. 이것을 채우지 못하면 천민자본주의가 되면서 세계문명을 선도하기는 커녕, 한국 내 외국인, 조선족 등도 설득할 수 없게 된다. 평화란 갈등이 없는 것이고, 갈등이 없어야 평화가 된다. 온전한 조선이 되기 위해 원불교가 종교 고유의 영적인 역할을 더욱 확대해 나가고, 시민사회단체와 연대도 해야 한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종교의 영역을 개척하는 일을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데, 분단과 반공에 편승한 월남 기독교인들은 정부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았지만 화해의 정신이 부족하다. 독일의 경우, 기독교는 1950년부터 동서독 화해지원 사업에 나섰다. 특히 기독교 NGO는 나치에 피해를 입은 인근 나라를 지원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의 신망이 높았다."

- 민족종교인 원불교의 시민활동에 대해 조언한다면.

 "천도교(동학)는 민족사적으로 조선말에서 한국전쟁까지 비중 있는 역할을 해 왔지만 일제 탄압, 해방 후 남북분단으로 영향력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본다면 민족종교, 원불교 역할의 비중은 크다. 황석영은 <손님>에서 한국은 서구 이데올로기의 실험의 장이 됐고,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가장 치열하게 싸운 곳이 한반도라고 이야기했다. 기독교는 개인주의, 국민주권주의, 권리의식을 전해줬지만 서양종교의 도구주의, 원죄론적 세계관이 인간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주고 있다. 이런 갈등을 극복하고, 한국인의 심성을 끌어올릴 화합의 종교가 필요한데, 원불교가 그 고유한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민족이라는 것은 삶의 공동체이고, 공통의 언어를 벗어날 수 없으며 문화이자 바탕이다. 우리 민족은 지난 100년 이데올로기 실험장이었던 공간을 넘어설 때가 됐다. 그동안 사회주의나 기독교는 우리의 전통을 버리거나 외면, 부정해 왔지만 이제는 전통을 새롭게 해석해 세계적인 사상으로 성장시켜 이웃나라들에게 전해줘야 한다. 그 전통사상을 이어받아 개별적 자아가 아니라 확대된 자아, 하나 된 자아를 실천하는 개인 중심의 시민운동을 넘어선 평화공동체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막연한 생각이지만, 원불교 독자성에 기초한 평화운동, 시민운동 방식, 방향을 살려내는 모색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 김동춘 교수는 사회학자로 〈대한민국은 왜?〉, 〈전쟁과 사회〉 등 왕성한 저술활동으로 우리시대 담론을 만들어왔다. 2006년에는 제20회 단재상을 수상했고, 오랫동안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 전문은 원불교신문 홈페이지(www.wonnews.co.kr)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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