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상 작가/북일교당
개신교와 천주교, 성공회 등 범기독교에는 헌금이 있고, 불가에는 시주가 있으며 원불교에는 '헌공금'이 있다. 원불교도라면 누구나 지게 되는 사종의무인 '보은헌공'을 실행하는 행위가 바로 헌공금이다. 이슬람교에도 보은헌공의 제도가 있는데 '자카트(Zakat)'라고 한다. 이슬람의 자카트는 다른 종교와 그 격을 달리하는 매우 독특한 제도이다. 〈꾸란〉에는 재물의 양이나 시기에 관계없이 자유의사에 따라 내는 '자선'과 연말에 정산을 한 뒤에 보유한 재물의 2.5 퍼센트를 바치는 '자카트'를 언급하고 있다. 자카트는 매우 엄격한 의무조항이다. 이슬람에서는 재물을 알라(神, God, 여호와)가 잠시 인간에게 위탁해놓은 신의 재산이라고 한다. 인간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도 그 재물이 본래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신이 위탁한 재물을 자신의 소유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래서 재물이 신의 것이라는 경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것이 자카트다.

자카트를 내지 않으면 합법적인 방법으로 재물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정당한 재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자카트를 내야 비로소 합법적인 소유로 인정받는다. 반면에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고 자카트를 바치면 어떻게 될까? 알라는 그 자카트를 아예 수락하지 않는다. 자카트를 수락하지 않으니 재물 또한 원천적으로 불법이며 무효다. 고리대금업을 통한 이자소득, 장물, 술을 팔아 번 재물, 이슬람이 금지한 방법으로 획득한 재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재물은 매우 중요하다. 돈이 없으면 생활 자체를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제생의세의 일도 전혀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돈을 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가족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돈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그럼에도 돈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각 이후 소태산이 저축조합을 맨 먼저 설립한 연유에 대해 우리는 깊이 성찰해야만 한다. 소태산은 쉬운 길을 버리고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그것은 돈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슨 대단한 기적이나 기행으로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통해 물질을 스스로 만들어내도록 소태산은 몸소 모범을 보였다. 소태산은 그 삶 전체가 헌공이었다. 그리하여 소태산의 육체는 그 자체로 헌공금이 되었다. 소태산은 받는 사람이 아니라 바치는 사람이었다. <꾸란>에는 자카트의 수혜, 즉 제생의세가 적시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 불우한 사람,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노예, 고아원을 비롯해 학교·병원·예배당 등 공공사업을 운영하는 사람, 지불능력이 없는 채무자, 사회모범자로서 격려와 위안을 받을 자, 이슬람 세무공무원, 여행 중에 예기치 않게 여비가 떨어진 여행자'가 그 대상이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 벌어들이는 모든 재물은 사은의 은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당연히 자카트를 내야 한다. 자카트를 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은이 은혜를 중단할 수도 있다. 은혜가 중단되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사은은 헌공금이라는 세금을 받아 제생의세에 바치고 있다. 세금을 받아 은혜에 사용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