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4-01 17:11 (수)
현대문명과 〈정전〉23. 일원상 법어와 깨달음
현대문명과 〈정전〉23. 일원상 법어와 깨달음
  • 원익선 교무
  • 승인 2017.06.30
  • 호수 1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일원상의 진리를 깨달으면, 하나의 세계 속에서 일체유심조는 물론 생사해탈과 인과의 이치를 오득하며,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6근을 자유자재한다. 일원상법어는 대산종사의 법문에서 그 핵심을 볼 수 있다. "나 없음에 나 아님이 없고, 내 집 없음에 천하가 내 집이로다. 이것이 나의 참 집이요 참 고향이니, 삼세의 모든 성자와 부처님이 늘 주거하고 사시는 곳이로다." 평소 강조한 유식의 전식득지 사상을 통해 확연히 알 수 있다.

유식은 요가의 경험을 통해 윤회의 원리는 물론 이를 벗어난 깨달음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분별은 내가 보는 대상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심층의식인 제8아뢰야식(함장식)에 저장된 종자에서 싹튼 주관과 객관의 인연에 의해 발생한다고 본다. 그것은 전5식에서부터 출발한다.

안이비설신의 전5식은 직관적으로 대상을 파악할 뿐 그것을 생각하고 추리하는 것이 없다. 다음 제6식인 의식은 전5식으로부터 전송된 내용을 대상으로 상을 만들어 고정시키고 집착한다. 이 분별 집착하는 성질을 변계소집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세계가 연기(緣起)로 얽혀 서로 의존해 있음을 인식하는 의타기성을 통해 삼라만상이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성질로 인해 삼계 내의 마음과 마음작용이 생기며, 무수한 선악의 종자가 과거에서 현재로 생기하게 된다. 그 근본 원인은 제7식 말라식에 있다. 이 말라식은 자나 깨나 활동하는 식이자 우리 의식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식이다. 다른 6식은 개별적으로 활동하다가 중지하기도 하지만, 이 강렬한 말라식은 24시간 가동된다.

말라식에서는 네 가지 번뇌 즉, 자신이 무상한 존재임을 모르는 아치(我痴), 자신을 실체화하는 아견(我見), 이에 의지해서 내가 영원히 존재한다는 아만(我慢), 자아에 대한 집착인 아애(我愛)를 낳고, 그 결과는 아뢰야식에 저장된다. 그것이 업의 종자이다. 무착은, 언어활동으로 현상을 창출하는 명언(名言), 자아가 실재한다는 견해에 의해 훈습된 아견(我見), 삼계에서 윤회하는 역할을 하는 유지(有支)의 훈습종자가 식을 오염상태로 만들고, 그 식이 다음 생의 연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종자가 반복되면 생사윤회가 된다. 종자의 소멸 즉, 식의 작용이 멈춰야 윤회를 벗는다. 오염된 종자를 수행으로써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말라식의 작용이 소멸하고 종자의 생성이 멈추게 되면, 우리 마음의 분별 집착인 변계소집성이 해탈의 세계인 원성실성(圓成實性)으로 전환된다. 이어 심신을 교란시켜 열반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오염원인 번뇌장을 끊어 인무아(人無我)의 심해탈과, 바르게 알아야 할 객관대상을 알지 못하게 방해하는 마음의 오염원인 소지장을 끊음으로써 법무아(法無我)의 혜해탈을 이루게 된다. 이에 따라 아뢰야식은 변하여 대원경지, 말라식은 변하여 평등성지, 6식은 변하여 묘관찰지, 전5식은 변하여 성소작지가 된다. 이 때 비로소 부처로서 우주의 참모습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이 진여의 세계이다.

즉, 번뇌를 끊는 것은 말라식의 정지이며,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식 종자를 허공처럼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어 주객의 분별에서 벗어나 우주와 합일하게 되면, 완전한 해탈의 세계는 물론 법어에서 말하는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