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혜복 교도/원남교당

오늘날 청년들이 교리공부를 등한하게 된 이유는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과 체험이 없기 때문


수많은 경쟁과 경계 속에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청년들에게 종교는 나중에 여유가 되면 생각해볼 만한 것으로,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 문제에 늘 우선순위가 밀리기 일쑤다. 또는 비진리적, 비사실적 종교들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종교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종교에 대해 항상 긍정적인 시각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때로 종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하지만, 심적으로 의지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원불교를 알게 된 후, 종교란 더 이상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며, 삶과 동떨어져 현실 생활 바깥의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됐다.

오늘날 청년들이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또 원불교 청년들에게 교법공부와 법회출석을 하는 것이 뒷전이 되어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원불교 교법을 제대로 공부하면 나의 마음을 사용하는 방법뿐 아니라 나의 삶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또 대종사 말씀과 정신이 경전에 머물러 있는 그저 고준한 법문이 아니라, 내가 그 말씀 그대로를 실천해보는 과정에서 내 삶 안으로 들여 올 수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망아진아현 위공반자성(忘我眞我現 爲公反自成)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씀을 받든 후엔 어딜 가나 나를 내려놓고, 전체를 살리는 마음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익숙하지 않을지라도 강연히 그렇게 해보려고 마음을 대조하고 챙겨보는 것이다. 직장에서 힘들고 어려워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일이 생겨 난처한 상황이 있었다. 가만히 멈춰 나와 회사 사이의 국한을 없애고, 내가 회사의 주인이라는 마음, 회사 전체를 위하는 마음에 주해보니, 한 생각이 났다. 내가 해야겠다. 물론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회사에서는 오히려 나를 내려놓은 나를 더 알아봐 주었고, 예기치 못한 가장 빠른 진급의 기회를 주었다. 아무리 힘이 든다 하더라도 대종사 말씀을 현실에 구현해보려는 소중한 마음에서 나오는 위력이라고 생각했다.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 하신 말씀이 참 좋다. 경계 따라 요란해지고, 좁아지는 마음이 내 마음인 줄 알고 살아 왔지만, 이제는 그것이 구름에 가린 달일 뿐이요, 나의 자성달은 변함 없이 여여함을 믿는다. 그러니 원래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타인을 향하는 마음을 낼 때에도 그렇다. 바깥을 향해있는 분별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상대가 저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라고 생각해본다. 우리 눈앞에는 일시적으로 드러난 현상만이 보이지만, 그 뒤로 우리가 모르는 그 사람만의 역사가 있는 것이며, 경계 따라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 보는 것이다.

이 시대의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찌 쉽고 평탄한 일뿐이겠는가. 서로 다른 환경과 경계, 현실 문제에 놓여있다. 하지만 어떠한 외부 경계에도 나의 자성은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으며, 어떠한 유혹 경계에도 물들지 않음을 믿고 노력해 천만경계에 부동하는 심법을 기른다면 모든 경계가 나를 성장시켜주는 관문일 뿐이다. 그 자리에서 은혜의 소종래를 발견하는 혜안이 열리리라 믿는다.

우리 청년들과 내가 먼저 진실로 교법을 실천하고, 진세에 처하여도 새 바람을 불리우고, 모두를 살려내는 도명덕화의 주역이 되기를 함께 노력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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