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인 / 사직고등학교

종수는 처음부터 눈에 띄었다. 3월 초 담임이 돼 교실에 들어갔을 때, 실내인데도 장난스럽게 우산을 펼쳐 쓰고 있었다. "이 아이는 자기를 봐 달라고 표현하는 거구나"라고 짐작했다. 여드름이 듬성듬성한 얼굴로 자신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며 교사의 관심을 받고 싶은 아이였다.

딱 봐도 모범생 쪽은 아닌 듯 보이지만 나의 직업병적 선입견은 접어 두고 종수가 임시반장을 희망하니 시키게 됐다. 종수가 자신감을 얻고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격려를 하였으나, 아쉽게도 선거에서 반장이 되지 못했다.

그것에 실망해서인지, 이후 종수는 "나 비뚤어질래~"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 은근히 자신의 할 일도 남에게 미루고, 청소 시간에는 안 보이고, 전체 교육시간에는 무단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수업시간에는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방해가 된다는 말을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듣게 했다. 내가 지도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분이 나빠지면 반항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고, 선생님을 망신 주는 방법으로 친구들에게 자신이 강자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쓰레기통을 분리수거장까지 가지 않고 교실 밖 다른 쓰리기통에 버리고 온 일이 있었다. 꾸중을 하니 자신은 잘못이 없고 오히려 교사인 내가 잘못됐다고 몰아가 지도가 되지 않았다.

그럴 때는 종수에게 편지를 썼다. 먼저 내가 실수한 부분이 있으면 인정을 한 뒤에, 화가 난 종수가 어떻게 했는지를 사실 그대로 말해주었고, 화가 나면 상대의 약점이라 생각되는 것을 대중 앞에 고의로 드러내 비난하려한 것도 알려주었다.

상대를 비난하는 방법으로 화를 표현하면 결국 해가 자신에게로 돌아오며, 화가 나면 지나친 말과 행동을 하는 경향은 어쩌면 그럴 만한 나름의 역사가 있었을 거라고 인정도 해주었다.

그러고 나면 종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는지 며칠은 상태가 좋지만 다시 원래 모습을 회복하곤 하였다. 그런 종수에게도 잘하는 것이 있었는데 축구였다. 덕분에 반별대회에서 우리 반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그럴 때는 긍정적인 모습을 일시적으로 보였다.

한 번은 종수가 부모에게 대들다가 나가 버렸다고 집에서 연락이 왔다. 학교를 오지 않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서 문자를 보냈다. "너도 화가 나서 그랬겠지만, 연락이 안되니 많이 걱정된다. 밥은 먹고 있는 건지. 네가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싶다면 졸업하고 취업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영리한 종수는 다행히 금방 돌아왔다. 학년 말이 돼 몇 회사에 취업지원을 하게 됐는데 결석이나 지각이 많은 것과 공부를 하지 않아 성적이 좋지 않은 것도 후회가 된다며 좀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새 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나에게 종수가 편지를 보내왔다. 지난해 말도 안 듣고 엇나가기만 한 것이 죄송하며 자신을 바르게 지도해주려 한 것을 이제야 알았다고 그랬다. 지금은 열심히 살고 있고 잘하겠다고.

아~ 눈물이 날 뻔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이렇게 변하는구나 싶어서였다.

지금 담임을 맡은 우리 반에도 종수에 뒤지지 않는 고집을 부리며 말을 듣지 않는 아이가 있다. 화나고 신경 쓰이고 노력해도 아무 효과 없어 보이는 이 일을, 그래도 내가 계속하게 하는 것은 종수처럼 시간이 지나서야 훌쩍 성장하는 아이도 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새 학교에 왔을 때, 정원에는 약간의 나무와 황량해 보이는 흙만 있었고 그 속에 뭐가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봄을 지나 여름이 되는 지금은 햇빛과 물과 땅의 도움으로 만발한 꽃들을 구경하는 사치를 누리게 되었다. 지금 내가 만나는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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