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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 칼럼/ 객석은 무섭다
교무 칼럼/ 객석은 무섭다
  • 최성덕 원로교무
  • 승인 2017.07.14
  • 호수 1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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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덕 원로교무/중앙남자원로수양원
사람에게 감동 줘야 하는 시대
후천 문맹은 사람을 모르는 것


'이름은 헛되이 전해지는 법이 없다'는 고사 성어 명불허전(名不虛傳)이 있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국립극장, 이태리 밀라노의 라 스칼라,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이 바로 그렇다.

이 중에서 라 스칼라는 최대의 가수와 최대의 연주자만이 설 수 있고, 또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로지오네(Loggione)라는 발코니 객석이 있다. 그 로지오네 관객들은 최선의 준비가 미비하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우우~ 하며 야유를 날리고 "넌 베르디를 모욕하고 있어" "누가 베르디를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치던" 하는 식으로 가수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픈 멘트로 용서를 하지 않는다. 이들의 야유를 이기지 못하고 "너희들끼리 잘해보아라"며 오페라 시작 10분만에 주연 배우가 사라지는 스캔들도 있었다. 충분한 연습과 철저한 준비없이 라 스칼라의 객석을 통과하기란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음악의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통과 의례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가수 이소라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입장권 환불로 많은 팬들에게 뮤지션의 자존심을 지켜 큰 감동을 준 일이 있었다.

서울 모 대학 콘서트홀에서 '봄' 공연을 펼치는 그는 내내 힘들어 했다고 한다. "오늘 저의 공연은 도저히 제가 여러분께 돈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다음에 저에게 기회를 다시 주세요." 그리고 머리를 숙여 사과까지 했다고 한다. 이소라의 뜻밖의 사과에 관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괜찮아요", "환불 필요 없어요" 하며 앙코르를 요청했지만 그녀는 끝내 거부했다고 한다.

이소라 '봄' 콘서트의 입장료는 5만원 이었다고 한다. 관객들은 5만원의 가치만큼 노래를 들어야 했지만 이소라는 5만원의 값어치를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상품으로 말하면 불량품이기 때문에 반품을 해 준 것이다. 이소라는 공연 기획사없이 준비했기 때문에 환불 비용은 고스란히 이소라가 부담(약 2천만 원)했다고 한다. 가수로서 자신의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진해서 콘서트 입장료 전액을 환불해 주기는 처음이라 한다.

객석은 무서운 곳이다. 감동을 주지 못하면 설 곳이 없다. 교당의 객석에 감동을 주고 있는지? 설법이 부실하면 헌공금을 돌려 줄 수 있는 용기는 있는지? 독일에서 박사과정 유학생이 첫 발표를 하고 지도교수가 충고한 말을 들려준 일이 있었다. "집으로 가져 갈 메시지가 없으면 쓰레기다." 사람이 줄을 서는 어떤 식당 주방에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고객이 짜다면 짜다" 고객이 찾아 구독 신청하고, 서가에 두고두고 보관하고 싶은 잡지, 지구의 일기장이라 하는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28개국에서 동시에 발행되고 보존률 90%가 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전 세계 독자들 사이에서 버리지 않고 소장하는 대표적인 명 잡지다.

13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의 종합 교양지로 우뚝 설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일까? 내셔널지오그래픽 하면 일단 생생한 야생 동물 사진들이 유명하다. 생동감 있는 야생 사진을 찍기 위하여 단독으로 정글에서 몇 달이고 위험을 넘기며 가장 가까이에서 동물들의 사진을 찍었다. 인물 사진도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과 내면적 교감이 있고 그 사람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 다양한 인간들의 삶을 사진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고객 즉 독자를 위하여 오늘도 세계 구석구석을 헤매며 가장 가까운 취재를 하기 위해 뛸 것이다.

후천개벽을 담당한 성자들의 외침에는 꼭 사람이 들어 있다. "사람이 부처요, 사람이 한울님이다" 우리는 지금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선천의 문맹은 글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면, 후천은 사람을 모르면 문맹이다.

사순절에 천주교 서울교구 일원동 성당에 초청되어 원불교를 소개한 일이 있다. 성당 안 거대한 예수 조각이 지켜보는 가운데 원불교에서는 "나의 조물주는 나다" 그리고 "하늘은 짓지 않은 복 내리지 않고, 사람은 짓지 않은 죄를 받지 않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 대중은 술렁거렸다. 교화를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당 방석은 "라 스칼라 로지오네" 객석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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