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사은신앙은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필수불가결한 가르침이다. 인류의 미래는 이 사은의 은혜에 달려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전통적 윤리는 물론 기성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윤리의 한계를 돌파하고 있다. 현실에서 볼 때, 20세기는 전쟁과 살육의 시대였다. 그러나 어떤 윤리체계나 종교의 교의도 이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과학과 물질에 종속되어 판단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는 선악의 현실적 판단을 주관적인 유심론 혹은 자신을 지배하는 신이나 다른 세계에 맡겨버렸다.

사은사상은 화엄세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세계야말로 불타의 연기설을 온 우주로 확장 해석한 것이다. 모든 존재가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서 중중무진의 연기로써 대립을 넘어 초월된 하나의 세계 속에 서로서로 인과 연이 되어 관계 맺고 있다는 가르침이다. 사사무애법계 또는 일즉일체·일체즉일이라는 사상은 이것을 말한다. 그러나 청정과 오염(번뇌)이 다 한 마음의 작용이라며 현실을 초월해 있는 한에 있어서는 세계의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더욱이 이러한 초월적 세계는 깨달은 자만이 얻을 수 있다. 모든 존재를 다 부처라고 보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가야 한다.

결국 화엄과 같이 법신불의 현현(顯現)인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다 부처임과 동시에 실질적 권능이 있다는 점에 입각하여 사실 혹은 실지불공을 통해 현대문명을 다루어야만 하는 윤리적 관점이 필요하다. 특히 인간은 참과 거짓, 선과 악, 불의와 정의의 주재자(主宰者)이므로 그 능력이 사은의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의 덕으로 잘 나타나도록 불공하는 것은 지당한 것이다. 사은윤리가 현대인에게 보편윤리로 정착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둘째는 정산종사가 설하듯이 사은은 우주의 진리 중 상생의 도를 드러내고 있다. 인과에는 음양상승에 따라 상생의 인과와 상극의 인과가 있지만, 네 가지 사은의 도는 상생의 인과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판단이야말로 판단이 모호해져가는 현대문명에 빛을 던져준다.

예를 들어 자연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연기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자연생태계를 보라. 상대의 파괴는 나의 파괴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크로포토킨은 일찍이 '상호부조론'을 통해 생태계가 상생과 조화와 협동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주었다. 자연은 상호투쟁만이 아닌 서로 돕는 관계도 함께 진화해오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인류의 발전이 투쟁만이 아니라 상호 협조와 협동을 통해 발전해 왔다는 최근의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정산종사가 전쟁은 서로가 은혜로운 관계임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한 것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진리의 근원인 법신불 그 자신의 모습인 이 사은의 은혜는 〈주역〉, 〈논어〉, 〈성경〉, 〈불경〉, 〈코란〉 등 모든 종교 경전의 기본 가치이기도 하다. 천지의 도를 가져다가 인도를 건설한 〈주역〉, 만물을 살리는 도인 인(仁), 무한한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 혹은 하느님, 평화는 정의의 열매라는 〈성경〉의 가르침, 마음과 이 세계의 평화가 일치됨과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행하라는 대승불교의 가르침, 그리고 자비심으로 포용하여 하나의 존재도 버리지 않는 불보살의 섭취불사(攝取不捨)의 사상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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