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인 교도

마음 놓치니 문제해결은 간데없고

비오는 날, 차가 밀려 천천히 앞차를 따라 가고 있는데 갑자기 운전석 쪽으로 옆 차가 스르륵 밀고 들어오면서 지지직 차 긁히는 소리와 함께 백미러가 앞으로 꺾인다. 앗 소리를 내는 동안 그 차는 내 차 앞으로 와서 자기 차를 세운다. 경계다. 60~70대쯤 돼 보이는 노인이 차에서 내려 자기 차만 확인하고 있다. 바로 옆에서 그렇게 차를 밀고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고 짜증을 냈다. 그러자 자기는 깜박이를 켜고 들어왔고 차가 들어오면 속력을 줄이고 양보를 해야지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도리어 역정을 낸다.

앗 경계다. 헐 이건 무슨 소리인가. 자기가 잘못해 놓고 나에게 양보 안 했다고 오히려 덮어씌우는 말을 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나도 목소리를 높여 무슨 말을 하느냐 바로 옆에 와서 박은 게 누군데 덮어 씌우냐고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상대는 자기 차를 계속 살피더니 서로 크게 차가 손상된 건 아니니 서로 양해하고 가자고 했다. 내 차는 긁힌 게 분명하게 표시가 날 정도라 안 되겠다 싶어 블랙박스를 확인하면 다 알 건데 왜 거짓말을 하느냐 잘못했다고 인정하라고 말했다. 어쩌지 하다가 집 앞이라 남편을 불러냈다. 이런 상대와 어떻게 해야할지 자신이 없었다.

남편은 오자마자 아무 소리 안 하고 경찰 부르고 보험회사 직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갔다. 이런 경우 서로 말로 잘잘못을 따질 필요가 전혀 없고 그냥 보험처리 하면 된다고 하면서 일을 끝냈다. 접촉사고가 났고 보험처리를 하고 차를 고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처리는 전혀 하지 않고 그 빗속에서 잘잘못을 따지고 서로 싸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 보기가 부끄럽다.

다 끝내고 집으로 오면서 남편에게 "나는 사실 그 아저씨가 잘못했다고 말하면 그냥 서로 양해하고 집에 올려고 했다"라고 말했는데 남편이 버럭 한다. 내 차가 손상이 됐는데 왜 그냥 오느냐고. 고쳐서 와야지 하고 말하는데 또 부끄럽다. 내가 바보 같았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거기다 내 차가 긁혔는데도 그냥 온다니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인 것 같다. 일이 생겼을 때 당사자 간 소통을 통해서 처리하는 나의 방식과 일 그 자체만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는 남편의 처리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일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처리하기보다는 귀찮은 일 같으면 대충 처리해 버리는 나의 습관 또한 알게 됐다.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경계 따라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있어지나니 그 억울하고 분한 마음보다는 일 자체를 우선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남편을 보고는 나의 일처리 방식은 틀렸다, 문제다 하면서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定)을 세우자.

문답감정: 사고가 크지 않아 일단 다행입니다. 사고는 문을 두드리면서 들어간다 예고하고 오는 게 아니다 보니 이런 사소한 일들이 일상에서는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평소에 쌓아 왔던 그 공부의 위력으로 일마다 사람마다 불공할 수밖에요. 100% 잘못해도 부득부득 우기고 싶은 그 마음. 100% 잘못이 없는데도 잘못이라고 뒤집어 쓸 수도 있는 상황이 있다는 겁니다. 그 상황이면 누구라도 팔짝 뛰면서 자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때 일어나는 내 마음을 보고 진리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100% 이기는 이치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계가 소중한 겁니다. 실지생활을 단련하는 공부를 통해 삼대력을 쌓을 수 있는 적기가 왔다는 것이겠지요. 경계따라 내 방식은 틀렸다. 나는 문제이다. 이런 내가 부끄럽다고 하는 분별성 주착심 공부를 통해 원래는 없는 성품자리를 바로 확인하게 됩니다. 빗속에서 접촉사고 문제를 다 해결해 주는 것도 모자라 은혜로운 시비로 도반님의 분별 주착심을 일깨워준 남편에게 큰 고마움을 전해 드리는 일만 남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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