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정행 교무/교화연구소
경전의 가르침보다 문자에 매달리진 않았는가
전무출신은 공중위해 몸과 마음 내놓은 무아봉공인


우리 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내용과 형식'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부단히 상호작용을 하면서 발전한다. 소태산 대종사의 깨달음도 내용으로 보면 '일원의 진리'일 것이고, 형식으로 보면 '원불교'라는 교단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내용과 형식 중 무엇이 더 소중할까. 두말할 필요 없이 내용이 더 소중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형식이 내용에 영향을 미쳐서 내용의 발전을 저해하는 경우도 있고, 발전을 촉진시키는 경우도 있다.

우리 교단은 대종사의 깨달음에서 출발해 불법연구회를 거쳐 원불교라는 교단으로 국내 4대 종교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근래에는 교단의 발전 속도는 저하되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연 무엇 때문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 내용을 담고 있는 교단이라는 형식과 조직이 그 발전을 저해하고 있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불교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보물은 불법승 삼보이다. 대종사가 대각 후 원불교를 창교하면서 바로 이 불법승 삼보를 혁신하고자 했다. 그것이 원기20년에 발표한 <조선불교혁신론>이다. 대종사는 여기에서 '등상불 신앙을 진리불 신앙으로, 외방불교를 조선불교로,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불교 생활불교로' 바꾸고자 했다. 형식주의에 떨어진 과거 불교의 불법승 삼보를 일원상과 <원불교교전>, 전무출신으로 대체함으로써 새 시대 새 종교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제대로 혁신해 가고 있는가. 먼저 진리불 신앙인 법신불 일원상부터 살펴보자. 과거 40년 전만 해도 법신불 일원상은 금장으로 된 것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목판 검정 일원상이었고 그 아래 '사은지본원 여래지불성(四恩之本源 如來之佛性)'이라 쓰여 있었다. 그런데 차츰 그 글귀가 생략되고, 총부 반백년기념관 신축을 전후로 목판 일원상도 사라졌다. 1980년 전후로는 금장 일원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 과정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간 것은 무엇일까. 대종사는 '귀교의 부처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묻는 시찰단 일행에게 농구를 메고 돌아오는 제자들을 가리키며 '저들이 바로 우리집 부처니라'고 했다. 지금 우리가 모시고 있는 법신불 일원상이 사람을 형상화한 등상불보다 더 추상화되고 고급화된 또 하나의 우상을 만들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다음은 <원불교전서> 중 <불조요경>에 관한 이야기다. <불조요경>은 본래 미완의 경전이었다. 교단의 경전편찬사였던 '정화사'에서 <원불교교전>을 만든 직후 기획했던 것이 제 종교 요전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때 이웃종교들의 주요 경전들을 정리하고 간추려서 제 종교 요전을 만들기로 했는데, <불조요경>만을 편정한 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더욱이 여기서 주목할 점은 <원불교전서>에 실린 <불조요경>은 한문으로 된 원경을 주경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한글 해석본을 주경으로 하고 있다.

그나마 <불교정전> 권2·3에는 한문본 뒤에 한글본이 부기 되어 있지만 <원불교전서>에는 아예 한문본 없이 한글 해석본만 실려 있다. 〈사십이장경〉, 〈현자오복덕경〉, 〈업보차별경〉 등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실 자체도 간과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불경을 공부하는 것은 한문을 배우기 위함이 아니라 경전에 담긴 가르침을 배우기 위함인데, 어느 순간부터 경전에 담긴 뜻보다는 문자에 매달리는 일은 없지 않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전무출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력서를 작성하다 보면 가끔 직업란을 채워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교무라 적어야 할지, 성직자 혹은 전무출신으로 적어야 할지 고민이 될 때가 있다. 성직이란 단어의 뜻 그대로 성스러운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우리는 성직자일까.

원불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성직자의 개념은 우리에게 적확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어느 교도님도 나에게 와서 교무님들은 전무출신이지 성직자가 아니라며 열변을 토한 일이 있다. 아마 교무들이 성직자임을 내세워 존경받고 대우받기만을 바라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에 한 말이라 생각된다. 교무는 공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내놓은 무아봉공인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전무출신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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