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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의품 35장/ 그대의 근기를 모르잖소
변의품 35장/ 그대의 근기를 모르잖소
  • 장오성 교무
  • 승인 2017.07.21
  • 호수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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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 공부
▲ 장오성 교무/송도교당
불가 용어로 근기(根機)란 말이 흔히 쓰인다. 법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나 그릇을 뜻하는 근기는 오랜 전생부터 만들어 온 살림살이다.

항마위 오르기와 여래위 오르기 중 어느 것이 더 어렵느냐는 제자에게 대종사는, '그건 근기 따라 다르다' 했다. 항마하면서 바로 여래위에 오르는 최상근기도 있고 오랜 시일을 항마위에서 지체하는 근기도 있으며, 심지어 특신에서 일초직입 여래위 하는 근기도 있다.

근기는 종교적 심성이나 법에 대한 이해력, 수행에 대한 태도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크게 상근, 중근, 하근으로 분류하지만, 사람 숫자만큼 근기도 각각이다. 고정된 것이 아닌 인과라서, 상근기도 수행 없으면 낮아지고 하근기도 믿음으로 정진하면 바로 깨칠 수 있다.

불가의 상근기는 세속의 훌륭한 인격이나 풍부한 식견, 영리함과는 무관하다. 불법 만나지 않은 이는 근기에도 안 든다. 불연, 사람 몸, 온전한 몸 받아 오는 삼난 돌파는 희유한 일이어서, 하근기라도 불법 만난 이는 불연 없는 큰 인격자와 비교할 수 없이 희귀하다. 보통급을 크게 다행한 급이라 이름하는 건 그래서다. 내가 부처이며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귀동냥이라도 하게 되는 까닭이며, 입문 자체가 부처되고자 했던 숙겁의 원이 발아한 것이다.

그렇게 와놓고 어찌 감히 이생에 견성, 항마, 감히 대각여래위가, 말이 되냐며 손사래 치며 안해도 될 겸양을 한다. 오백생 닦아 성불했다는 부처님에 견주며 그보다 더 아득한 내생사로 던져놓는 불신 속 수행에만 지성이다. 근본을 바꾸는 가능성을 외면하고 겉만 다듬어가는 수행자로, 이생엔 이만큼만 하고 가야지 작정한다. 견성이든 항마위든 여래위든 오르기 어렵다며, 된다는 믿음을 내지 않는 이에겐 오지 않는다. 믿음 없는 신앙 수행은 죽은나무에 거름하기다.

심신의 고통 없고 자유자재하기(성불=여래)는 다 원하지만, 어떤 이는 단지 욕망만 할 뿐, '그게 아무나 되나? 이생엔 어렵지!' 하며 원과 행이 갈라진다. 어떤 갸륵한 이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여래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금 원과 행을 같이한다. 서원과 신분의성은 일체를 가능케 하고 근기도 바꿔놓는다. '쉽지 그럼!' 해야 연이 맺어진다. 된다고 믿어야 된다.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하는 이에겐, 무수히 했던 이에겐 쉽다. 밥먹고 잠자는 것이 쉬운 이유는 숱한 생을 통해 숱하게 해봐서 그렇다. 부처 아님이 없으니, 스스로 부처임을 믿고 지금 부처의 행을 자꾸 하면 부처다. 성불을 '언젠가 나중으로' 기다리지 말라. 이내 몸을 이생에 제도못하면 어느생을 기다려서 제도하리요. 자신제도가 성불인데, 삼난을 돌파해 간신히 찾아와놓곤 다음생 그 다음생 기다리다 경쟁률 높아 사람 몸 받는단 보장 못할텐데.

누구도 지금 자기 근기를 진실로 모른다. 전생의 닦음을 알 수 없고,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알 수 없다. 영생을 놓고 보면 한생 그거 찰나다. 인과 100%이니, 지금! 인을 심어야 한다. 여래가 곧 나이니, 항마위도 여래위도 내것이라 확고히 믿어 행하면 하근기여도 일초직입 여래위다. 법위오르기는 근기며 인과지 누구의 것으로 정해있지도 어렵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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