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 교단은 일요 정례예회 때 설교 한편 듣고 오는 종교가 됐다. 모르긴 몰라도 재가교도들이 생각하는 교당은 일주일에 한번 예회 보러 오는 곳이다. 예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무님의 설교이며, 때론 설교를 잘했다 못했다 기준으로 주재교무의 법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좌선은 출가인들의 몫이 되어버리고, 조석심고는 교도의 4대 의무로 정해져 있지만 보편적 문화는 아니다. 괴로운 일을 당할 때는 사죄를 올리고 난경에는 순경될 심고와 기도를 올리라 했지만, 진리불공은 생활속에서 등한하게 됐다. 상시일기는 생활에서 거의 먼 이야기다. 교당 교화단회는 한 달에 한번 법회와 함께 의무적인 모임이 됐고, 정기훈련도 1년에 한번 1박2일정도로 마무리한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대부분 교당 모습이며 우리 교화현장의 현실이다.

교단 2세기를 시작하는 지금, 개교의 동기에서 말하는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한다'는 교법의 방향성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교도들이 생활속에서 교법으로 변화되고 있는가? 신앙과 수행의 원만한 공부길로 교도들을 법위등급의 표준에 맞게 진급시키고 있는가? 현재로서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 원인을 묻는다면 훈련을 통해 변화되는 시스템이 이뤄지지 않아서라고 말하고 싶다.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교법에 바탕한 생활의 변화가 없는 것이고, 교당 주재교무와 상시 문답감정이 원만하지 못하니 공부길이 어렵기만 한 것이다. 교도들의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살핀다면 설교중심의 교당예회, 상시응용주의사항과 교당내왕시주의사항같은 훈련의 부재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물론 설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훈련을 통해 범부의 탈을 벗는 변화가 실생활에 나타나는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중심되는 것이 우리 교법의 특징이다. 현재 설교 중심으로만 치우쳐 있는 예회에서 상시응용주의사항, 교당내왕시주의사항 등 정기훈련이 정확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단초기 소태산 대종사는 삼육일(6·16·26) 예회를 진행했다. 모든 회원들이 함께 보면 예회가 됐고, 단별로 진행하면 단회가 됐다. 단회는 단원일기 점검과 의견제출, 단법에 대한 교육 등 상시훈련의 공부가 매달 단회를 통해 진행됐고, 예회는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을 아우르는 역할을 담당했다. 교당은 곧 훈련도량이었으며, 대종사의 법설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설교중심의 예회가 아니었다.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구조로는 소태산 대종사가 말씀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이뤄지지 못할 것이다.

교단 2세기의 지금은 그 어떠한 문제보다도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현재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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