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공동체 안에 교인 묶어놓은 것은 마귀의 계략"

인터뷰 전문(全文)

이번호에서 만난 이는 강대인 대화문화아카데미 원장이다. 은덕문화원 접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이선종 원로교무와의 오랜 친분과 에피소드로 시작했다. 특히 그의 선친 여해 강원용 목사의 가르침을 받고 교류했던 이야기들은 엊그제 마냥 오버랩됐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여해라는 종교인, 아니 사상가가 끼친 영향력은 지대했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부활하며 또 다른 여해들을 탄생시키고 있었다. 올해는 여해 탄생 100주년이다.

그는 "<여해 강원용 목사 평전>이 출간됐는데, 목사님의 모든 에너지와 지향은 결국 '신앙'이었다"며 "예수님은 세상을 위해 오셨지, 교회를 크게 만들려고 오신 것은 아니다. 가장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셨다"고 고백했다. 그와 나눴던 이야기를 지면으로 정리해 봤다.

▲ 강대인 원장은 문명화된 사회로 나가려면 사도들이 종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올해가 여해 강원용 목사의 탄생100주년이다. 얼마 전에 <여해 강원용 목사 평전>도 발간 것으로 안다. 대화문화아카데미는 어떤 곳인가.
"1959년 기독교 신학자와 사회과학자 약 30여 명이 모여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회'를 설립해 당시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연구했다. 그러다가 1965년에 법인의 명칭을 '크리스챤아카데미'로 정했고 이 이름이 지금까지도 많이 알려졌다. 그렇게 오다가, 2000년 창립 35주년을 맞아 명칭을 대화문화아카데미로 바꿨다. 당시 탈냉전 분위기에서 북한과의 대화에 관심을 두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중국과도 대화를 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이 있었는데 기관명에 '크리스챤'이라는 표현이 있으면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프로그램은 '사회적 대화'이고 이를 통해 이 땅에 평화를 뿌리내리려 노력해 왔다. 프로그램의 큰 방향은 인간화와 평화를 지향하면서 우리사회에 바른 관계와 바른 소통을 이뤄가는 일이다. 우리 기관은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졌으며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데 뜻과 실천이 모이도록 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일제시대, 한국전쟁을 거쳐서 사회적인 격동과 변동의 세월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압축성장을 하면서 삶의 전반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많은 것을 이뤘지만 그만큼 잃어버린 가치들이 많은데 특히 바른 소통, 바른 관계를 잃어버린 것 같다. 어떤 종교든 하늘과의 소통을 소중히 생각한다. 그런데 옛날과 비교하면 하늘로부터도 멀어졌고 이웃과도, 뭇사람들과의 관계도 멀어져 공동체성이 와해되어 버렸다. 자연, 환경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생각과 입장을 달리 하는 사람,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소통이 안되고 있다. 갈려 있고 대립하고 긴장된 관계다. 이런 관계를 바르게 하는 것이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사명이다. 다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 그 정신으로 한국사회에서 소임을 담당하고 있다."
 
-전신 크리스찬아카데미가 한국사회 종교간 대화의 물꼬를 텄고, 상호 만남과 교류를 통해 갈등과 반목을 완화해 왔다고 생각한다. 초기와 달리 현 시대는 다종교사회로 다양한 종교간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요즘 종교 간의 대화를 어떻게 보는가.
"우리 기관이 설립되던 1965년에 종교간의 대화모임을 시작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3.1운동을 종교간 대화로 볼 수 있는데, 당시에 개신교, 불교, 천도교가 중심이 되어 전국민적으로 평화를 지향하는 운동을 벌였다. 더 올라가면 신라시대에도 포함삼교(包含三敎)의 전통이 있으며 여기에서도 종교간 대화의 정신적, 문화적 뿌리를 확인할 수 있다. 타종교와 공존하는 문화는 한국이 지닌 독특한 전통이다. 하지만 3.1 운동 이후 종교간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이에 따른 반성에서, 종교를 하나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고 대화하자는 취지에서 1965년 종교간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한반도가 처한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서 종교가 세상과 분리돼서 외딴 섬에 존재할 것이 아니라 종교간 대화와 협력을 추구하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사실 시작할 때는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은 여러 종교가 같이 일도 하고 행사도 하지만 그때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종교간의 대화가 진전되면서 '한국종교인평화회의'가 생겼다. 이 기구가 제도화되기 전, 4반세기는 크리스찬아카데미가 종교간 대화를 이끌었다고 자평한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는 아시아, 세계종교인평화회의와도 연대하는 기구이다. 지금은 종단 수장 중심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데 일반 평신도, 풀뿌리까지 얼마나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 누구보다도 외부에서 원불교를 잘 바라보고 계신다. 더불어 경계선에서 원불교를 알리는 데도 일조하고 있는데, 원장님이 보신 원불교는 과연 어떤 곳인가.
"우리 기관과 초창기에 협력했던 분들은 이제 은퇴하거나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젊은 시절부터 아카데미에서 근무했는데, 실질적으로 종교간 대화에 많은 기여를 해온 종단이 원불교다. 황온순 여사(팔타원 황정신행)를 비롯해 원불교 어른들이 겸손하게 그리고 실질적으로 역할을 하셨다. 인적, 물적으로 어느 종단보다 많은 지원을 했다.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 시절에 대화모임에 참석하느라 교통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익산에서 원불교 지도자들과 원광대 교수들이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런 인연들이 쭉 이어져 왔다. 강 목사님은 종교간 대화를 위한 국제교류와 협력을 만들어 가시면서 아타원 전팔근 교무와 협력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래 전, 대산종법사도 익산 왕궁면 허름한 비닐하우스로 강 목사님을 초청하시기도 할 정도로 깊은 정의(情誼)가 있었다. 원광대가 강 목사님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기도 했다. 종교간의 대화는 여러 종단이 협력해서 일을 추진했는데 원불교에서 오신 교무들뿐 아니라 청년교도들도 성실한 모습을 보여 다른 종단의 귀감이 됐다. 아카데미는 개신교를 기반으로 했지만 개신교 청년 신자들에게 원불교 청년들을 많이 배우라고 말할 정도로 교도들은 늘 겸손했고 조용히 많은 일을 했다.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주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종단의 지도자들에게도 느낄 수 있었다. 또 지난해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를 참석하면서, 험난한 한국사회에서 100년 만에 이렇게 큰 교세를 형성했다는 사실에 경이를 느꼈다. 그리고 지도부의 성비가 균형이 있는데 이는 어느 종단에서도 찾기 어려운 장점이다."

- 너무 칭찬이 과한 것 같은데 교단 발전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국제 관계를 고려해 봐도 민족불교로서 원불교가 해야 할 독특한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스스로 그 사명을 찾아 이 시대에 의미있는 변화를 국내외에 이뤄갔으면 한다. 일반적으로 살림이 커지면 종교도 제도화 된다. 너무 큰 배가 되면 항로를 변경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원불교의 성장에 많은 기대를 하면서도 한편 창교정신과 멀어지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 교정원 서울이전을 어떻게 생각하나.
"서울과 영산성지, 둘의 균형은 있으면 좋겠다. 내가 다니는 교회를 예로 들자면, (교인들이) 모이고 흩어지고, 모이고 흩어진다. 교회에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 세상 속으로 흩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으로 흩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갈등이 생긴다. 그러면 다시 교회에 모여서 성찰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새긴다. 매주 교회에서 회개하면서 균형을 찾는다. 이처럼 기도할 수밖에 없는 균형이 필요하다고 본다. 공간의 영성도 역시 중요하다. 영산도 중요하고 삶의 현장도 중요하다. 예수는 성 밖에서 늘 예루살렘을 향해 메시지를 던졌다. 오래된 종교건축물은 사람들에게 기억으로 남아있는 장소다. 기억에 남는 영성의 장소, 공간의 영성이 중요하다."

- 종교의 영성, 시민사회와의 호흡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종교가 시민사회 성숙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시민사회의 중요성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시민사회는 아직 성숙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물론 서구를 반드시 모델로 삼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서구의 경험을 보면 시민사회는 왕정과 봉건제도가 무너지면서 성장했다. 그런데 한국은 조선왕조 붕괴 이후 바로 일제시대로 넘어 갔다. 시민사회가 성장할 시기가 없었던 것이다. 시민사회는 주체적인 개인이 중심이 된다. 그런데 일제 36년을 지나고 해방, 전쟁 그리고 남북분단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군사적 집체문화가 지속되었다. 이는 시민사회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다양한 개인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시민사회인데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을 하려고 보니 권위적인 집체문화로 갔다. 다행히도 이번에 촛불을 보니까 시민사회가 성숙 단계로 가고 있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처한 국내외 상황이 19세기말보다 더 엄중한 시기라는 점이다.

시민사회가 성숙되면 어떠한 변화 속에서도 삶을 민주적이고 안정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 아직까지 시민들이 그러한 역량을 축적한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재난 소식을 접하면 수재의연금을 보내는 사람들, 태안 기름유출사고 때 자원봉사에 나선 사람들. IMF 구제금융 때 자발적으로 위기 극복에 나선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대한민국의 힘이다. 이처럼 맑은 물이 지하에 많이 흐르고 있으나 이를 끌어올리는 펌프인 중간집단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착한 의지로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회가 시민사회다.

시민사회의 중심가치는 결국 공공성이다. 우리식으로 하면 종교성인데, 이는 이웃사랑, 상구보리-하화중생의 정신으로 종교가 시민사회에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 종교 공동체 안에 교인을 묶어놓는 것은 마귀의 계략이며 유혹이다. 교회 안에서 받은 깨달음을 세상을 향해서 써야 한다. 종교 안에서만 소진하면 안된다. 내후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한국이 처한 복합적인 위기상황에서 종교가 그 중심가치를 보여주어야 하겠다. 지금처럼 물질, 돈이 중심이 되는 시대에서 빵도 중요하지만 생명의 말씀이 중요하다는 점을 종교가 실제로 입증해야 할 때라고 본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 대한 교화가 필요하다. 생명, 평화, 종교성 등을 젊은이들이 내면화할 수 있도록 종교계가 나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젊은이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인지도 고민할 문제다. 결국 종교계는 사람답게 사는, 더 높은 차원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돈이 전 세계를 점점 더 지배하고 있다. 세계를 향해 이제는 한국에서 새로운 메시지를 발신할 시대이다. 이런 차원에서 원불교의 역할도 있다. 원불교는 민족불교로서 한반도의 상황과 역사 속에서 발원했다. 그렇기에 전 세계, 특히 서양을 향해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이미 서양에서 명상 프로그램, 힐링 프로그램이 번져가고 있는 것도 그런 필요를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민사회에서 종교성과 영성을 찾는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시민단체라는 곳은 사명감이나 좋은 뜻이 아니면 일해 나가기 어렵다. 그런데 종교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를 헌신할 줄 알기에 공공성을 추구하는 자세가 갖춰져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기독교 윤리의 핵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이해관계가 아니라 종교 안의 사랑, 즉 조건 없는 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내면화한 사람은 공공을 위해 일하는 자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회원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시민운동이 어쩌다 보니 사무국 중심의 운동이 됐다. 안에서부터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내후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사회가 문명화된 사회로 나아가려면 사도들이 종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국회 특위에 각계각층을 대변하는 국민이 참여해 국회 특위 위원과 함께 개헌발의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헌법 개정 작업에 국정 기조를 만드는 작업에 여성들이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생명, 인권, 지방분권도 관심을 뒀다. 개헌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아카데미가 두 번 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처음은 80년 서울의 봄, 군정에서 민정으로 넘어가야 하는 헌정 위기상황이었다. 당시 개헌안은 군정에서 민정으로 넘어가는 현실적인 틀을 디자인한 것이었다. 빨리 민간정부로 넘어갔으면 하는 의도에서 개헌안을 시민사회에 내놓았다. 두 번째는 2011년이고 이때 발표한 안을 다듬어서 작년 2016년에 다시 내놓았다. 현행 헌법은 87년 체제의 유산인데 벌써 만 30년이 지났다. 그래서 제헌헌법 60주년을 앞두고, 다시 헌법을 생각할 때라고 생각해 2006년부터 약 10년 동안 새로운 헌법을 주제로 꾸준히 대화를 지속해왔다. 그렇게 이어온 대화의 성과를 지난 해, '대화문화아카데미 2016 새헌안'이라는 책으로 담았다. 참고로 정치권은 내년 지방선거를 기해 국민투표로 개헌을 추진한다고 합의한 상태다.

국민주권 정신을 기반으로 헌법이 제정되었지만 그동안 실제로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헌법개정만 해도 그렇다. 국민이 나서서 개정했다기보다는 정치권을 포함한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헌법이 개정되어 왔다. 87년 헌법 체제가 30년이 되는 올해, 정부형태, 기본권 분야는 물론이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정치공동체의 규범을 새롭게 다듬는 차원에서 개헌을 고민해야 한다. 지도자가 누구인지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시스템 자체가 민주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헌법 개정뿐 아니라 선거법 개정까지 포함하는 정치관계법 개정을 주장하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현대 사회는 다원사회다. 따라서 실질적인 다당제가 정착되어 각계의 목소리가 의회에 대표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정치 선진화의 요건이다.

개헌에는 이런 방향의 정치개혁이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발생하는 국정의 불연속성 문제는 이제 극복해야 할 때가 되었다. 또한, 이번에는 개헌절차도 개선되길 바란다. 개헌안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누가 참여하느냐, 어떻게 조문화하느냐와 같은 절차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국민들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헌법, 우리 정치공동체의 규범을 만들어야겠다. 내년 지방선거까지 정치관계법들이 얼마나 정리가 될지 미지수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결국 국민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치는 힘의 역학관계다. 참여와 관심이 커지면 정치계도 영향을 받는다. 반대로 국민들이 조용하면 의미있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라는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여성을 위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는 많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여성에 의한, 여성의 참여다. 복합위기가 다가오는 엄중한 시기를 헤쳐 나가려면 무엇보다 다양한 국민의 국정참여와 특히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는 종교의 변화가 요청된다."


강대인 대화문화아카데미원장은 연세대학교 문과대학를 졸업한 뒤 독일 Bochum 대학과 퀼른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육학을 전공했다. 현재 (재)여해와 함께 대화문화아카데미원장이며 (재)크리스챤아카데미 부원장겸 바람과물연구소장,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또한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체 위원회 위원, 한국 교육방송공사(EBS) 이사를 역임 했으며, (재)과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이사장(2013~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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