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응주 교무/법무실
무소의 뿔처럼 홀로 나가는 정진심이 있어야
재색에 미혹없이 정진하면 도를 얻을 수 있어


佛言- 夫爲道者는 猶木在水하야 尋流而行이니 不觸兩岸하고 不爲人所取하며 不爲鬼神所遮하고 不爲洄流所住하며 亦不腐敗하면 吾保此木이 決定入海矣요 學道之人이 不爲情欲所惑하고 不爲衆邪所誑하며 精進無爲하면 吾保此人이 必得道矣로라

"부처님 말씀하시되 대저 도를 닦는 이는 나무토막이 움틀굼틀한 좁은 내를 지나 큰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나니 나무가 물결을 따라서 떠나가되 두 언덕에 닿지도 아니하고 사람이 건지지도 아니하고 무엇이 막지도 아니하고 웅덩이에 머물지도 아니하고 또한 썩지도 아니하면 나는 이 나무가 결정코 바다에 들어가리라고 보증하노라. 도를 배우는 사람도 이 나무와 같아서 색에도 미혹하지 않고 재물에도 미혹하지 않고 사도에도 미혹하지 않고 기타 여러가지 환경에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직 함이 없는 법에 정진(精進)하여 어느 곳에든지 걸리지만 아니하면 나는 이 사람이 반드시 도를 얻으리라고 보증하노라."

〈사십이장경〉 27장은 진리를 얻고자 하는 수도인이 좁은 냇물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는 나무토막 같이 수많은 경계를 당하여도 걸리지 않는 중도행(中道行)과 재와 색에 담박한 수행을 한다면 반드시 도를 얻게 되리라는 법문이다.

심류이행(尋流而行). 물의 흐름을 찾아서 그것에 몸을 맡기면 자연스럽게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듯이 대도정법을 만나 수행을 하면 시일의 장단은 있을지언정 결국 성불제중의 서원을 이룰 수 있다.

불촉양안(不觸兩岸). 물의 흐름을 따라 나무토막이 떠내려 갈 때 양쪽의 언덕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어느 한쪽이라도 치우치게 되면 결국 나무토막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게 된다. 양쪽의 언덕이란 선과 악, 이로움과 해로움, 좋아하고 싫어하는 등을 말한다. 한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행을 말씀한 것이다.

불위인소취(不爲人所取). 사람이 건져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무를 건져간다는 것은 땔감이나 다른 용도로 사용해 버린다는 뜻이다. 수도인이 사소한 인정이나 감정에 끌린다면 어떻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무소의 뿔처럼 홀로 나가는 용맹정진심이 있어야 한다.

불위귀신소차(不爲鬼神所遮). 귀신이 막지 않는다는 뜻으로 수도인이 공부를 하고자 하나 마구니가 나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훼방할 때 서원이 약하다면 그 길을 계속 밀고 나갈 수 있을까? 〈사십이장경〉 26장에서 깨달음을 앞둔 부처님의 뜻을 꺾고자 마왕 파순이 옥녀를 보내 시험하였듯이 큰 공부를 하려는 서원을 가진 수행자는 결국 진리의 도움뿐 아니라 자신도 그 경계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불위회류소주(不爲洄流所住). 회류는 소용돌이를 말한다. 나무토막이 소용돌이에 휩쓸리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뱅뱅 맴돌기만 할뿐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진리와 법과 스승을 의심하고 회상을 의심하며, 삼학을 병진하지 않고 어느 한 부분에 집착한다. 그것만이 최고라 생각해, 자신의 의견을 받아주지 않으면 스승과 동지를 멀리해 자기 울타리에 갇히게 돼 진급하지 못하게 된다.

역불부패(亦不腐敗). 그러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바다로 전진한다 해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면 바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썩어버릴 수도 있다. 자칫 게으름을 피우면 결국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불위정욕소혹(不爲情欲所惑). 재와 색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재욕과 색욕이 수도인의 앞길을 망치는 첩경인 것을 알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불위중사소광(不爲衆邪所誑). 삿된 것들에게 속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삿된 것들이란 공부 없이 도통을 꿈꾸고, 노력 없이 성공을 바라며, 준비 없이 때만 기다리며, 사술(邪術)로 대도를 조롱하고, 모략으로 정의를 비방하는 무리들로 이들의 감언이설에 속지 말고 인도정의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대종경〉 전망품 9장)

정진무위(精進無爲)는 무위를 얻기 위해 정진해야 한다. 정진이란 용맹스럽게 선을 실천하고 악을 끊는 것을 말하고 무위란 인위적이지 않는 행동, 상(相)이 없는 행동을 뜻한다. 정진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궁극의 경지인 무위에 도달함을 말한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마치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나무가 물의 흐름을 잘 찾아야 목적지인 바다에 도달할 수 있듯이 바른 법을 찾아서 선·악, 시·비, 애·증 등 양쪽 언덕에 치우치지 않은 중도행을 하여야 한다. 인정에 끌리거나 사사로운 취사를 해서는 안되며 뜻하지 않는 유혹과 경계가 오면 법에 바탕하여 슬기롭게 넘겨야 한다.

또한, 진리와 법과 스승과 회상을 의심하며 자기의 지식과 주견에 빠져서 삼학을 편수하면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무토막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마음이 다른 곳으로 흐르지는 않지만 수행에 대한 게으름은 마치 고인 물에 나무가 썩듯이 자신을 썩게 만든다. 그래서 도를 구하는 사람은 재와 색에 미혹되지 않고 삿된 것들에 속지 않고 무위의 경지를 얻기 위해 쉼 없이 정진한다면 반드시 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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