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명 교도/계룡·도곡교당
일주일에 한 번 예회 위한 공간이라면
교당의 기능과 역할 함께 고민해 봐야


벌써 7월이다. 일년의 반이 지났으니 누구나 한 번쯤 연초의 계획을 돌아보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을 것이다. 연초부터 꾸준히 이어온 일도 있을 테고, 벌써 작심삼일로 끝난 것도 있을 것이다. 열심히 하겠다는 굳은 다짐만 덩그러니 남겨진 채 어떤 진전도 없는 일은 잊혀진지도 모른채 잊혀져 가고 있을 것이다.

교화란 어쩌면 출가, 재가를 떠나 우리 모두의 생활 그 자체일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구호만 난무할 뿐 어떠한 실체에도 접근하지 못하는 부분이 교화대불공이 아닐까 생각된다. 구체적인 교화의 대상이 누구인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만 있는 듯하다.

기본적인 자력조차 갖추지 못한 영세교당에서의 교화란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꿈같은 이야기다. 농촌 지역은 물론이고 다양한 세대별 요구사항이 혼재한 도시지역에서의 교화는 영세교당의 힘으로만 극복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면 자력을 가진 교당에서도 버거운 일이다. 우리가 말하는 자력 교당은 그저 남에게 손 벌리지 않는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교무들의 많은 애로사항 중에 교도 및 교당관리, 회계업무에 대한 부담을 이야기한다. 잘해야 십 수 명의 교도를 가진 단독 근무 교당에서 처리해야 할 행정업무가 부담스러울 수준이라면 그 관리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시스템의 개선은 당연하고, 재가의 참여 등으로 교무 중심의 업무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 그 보다는 행정업무를 지구 수준으로 통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교구자치제에 걸맞는 근본적인 운영 체제의 개선 없이는 교무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당이 일주일에 한 번 예회를 위한 공간이라면 교당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특히, 교당이 교무 생활관으로서의 기능이 앞선다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과 대종사가 종교에 대해 말씀하면서 "인간이 없는 산간에 교당을 두었으니 세간 생활에 분망한 사람들이 어느 여가에 세간을 벗어나서 그 가르침을 받을 것이며…" 라고 했던 말씀을 돌이켜 보면 교당에 대한 현재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회에서 요구하는 종교의 역할을 대입해보면 지역 공동체에 얼마만큼 기여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척도로 판단되어야 한다.

개신교에 카페 교회가 있다. 지금도 긍정론과 부정론이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 카페 교회가 아니라 카페 교당이 적합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상가 교당보다는 오히려 일반인들과 접촉점을 찾기가 용이한 카페 교당이 직업과 수행, 교화를 병행하는 출가자의 모습을 이상향으로 그리는 우리에게 적합한 교당의 한 형태가 아닐까 생각된다. 스터디/비즈니스 카페 교당, 시민선방 교당, 좌선/요가교실 교당, 빵집 교당, 팬션 교당, 게스트하우스 교당 등등 다양한 계층의 요구에 부합하고, 생활시불법, 불법시생활을 솔선할 수 있는 모습으로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물론 영세교당 운영과 청년 및 중장년, 노년 일자리 지원과 연계해서 말이다.

집중이란 기존 업무를 그대로 둔 상태로 한두 가지 사항에 열심히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집중의 핵심은 버리는데 있다.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일을, 정책이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과감히 버려야 할 일을, 목표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는 잘되고 있는 일 조차도 버릴 수 있어야 제대로 집중할 수 있다. 하던 일 다 하면서 새로운 일에 혹은 목표로 삼은 일에 열심히 집중하겠다는 것은 착심일 뿐이다. 마음공부의 이치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일본의 유명한 경제학자인 오마에 겐이치는 인간이 변하는 방법은 3가지 밖에 없다고 했다. 첫 번째는 시간 쓰는 법을, 두 번째는 사는 장소를, 세 번째는 교류하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가장 무의미한 일은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이 라고 했다.

한 해의 결실을 향해 달려가는 시점에서 '새로운 결심'만으로 같은 사람들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시간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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