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연봉 교도/산본교당
욕실 나올 때 슬리퍼 문턱 걸쳐놓기
유무념 오래 하다보니 토가 떨어져
믿음과 정성이 바탕돼야 실효과 얻게돼


고교 1학년 때 아주 우연한 기회로 원불교와 인연을 맺고 입교했다. 교당에서 '유무념 공부'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나는 큰 거부감은 없었다. 손이 귀한 집안의 맏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어른들의 관심과 기대 속에서 성장하면서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구분하며 살아왔다. 성장해서는 주위의 권유로 유무념 공부를 시작했고, 하다 보니 항상 나를 챙겨보려는 습이 길러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대종사님은 사용한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두셨다는 법문을 읽고, 나 역시 주변 정리정돈에 항상 노력을 해왔는데 어느 날은 욕실에 들어가려는데 '물기에 젖은 슬리퍼'가 어지럽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통상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것부터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유무념에 '욕실에서 나올 때는 슬리퍼가 젖어 있든 안 젖어 있든 문턱에 비스듬히 걸쳐 놓기'라는 조목이 추가됐다. 실행에 옮기기에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하다 보니 재미가 솔솔했고, 슬리퍼를 가지런히 놓는 일은 여러 가지 유무념 공부 중에 단순한 한 조목이었다.

그러던 중 원기96년 8월에 <원불교교전>을 세필 사경해 법타원 김이현 종사님에게 올리고 잠시 정담을 나누게 됐다. 법타원님은 "유념공부는 어떻게 해?"라고 물으셨다. 나는 나름대로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유념공부의 주제를 명확히 정해서 하라며 유무념공부 체크기 '마인드 스터디'를 주었다. 주머니에 가볍게 넣을 수 있는 작은 물건이니 별 것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그 날 귀경 열차 안에서 나는 곰곰이 생각하며 주제를 확실히 하고 한 번 철저히 실천을 해 보자고 다짐을 했다. 결국 선택과 집중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흔히 말하는 '토가 떨어지는 공부'를 할 수 있다.

길도 가보던 길이 익숙하고 일도 해보던 일이 익숙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안 해본 일은 잘 안 된다. 다행히 나는 유무념 공부에 대해 재미를 느껴본 입장이고 살아가면서 꼭 실행해야만 할 필요성을 아는 사람으로서 어렵거나 부담감이 가는 일은 없었다. 그저 묵묵히 실행하다보니, 자다가 욕실에 가거나 손님들이 왔을 때 슬리퍼를 보고 내가 나온 후에 누군가 다녀간 여부를 자연히 알게 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는 행위를 다른 가족에게 떠벌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유무념을 하던 중 어느 날 자연스레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됐다. 내가 신발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힘든 일 중에 하나가 허리를 굽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신발을 그냥 벗어 놓고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그러나 가지런히 놓는 등 정리를 한다거나 신발장에 넣는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특히 몸을 굽혀 신발을 짚는 것은 가벼운 고역이다. 그런 내가 신발을 정리할 때면 옆에 흐트러진 신발까지 바로 놓아주는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사실 나는 허리가 안 좋은 편이라 허리를 굽히거나 쭈그려 앉는 자세가 상당히 불편하다. 하지만 신발을 정리하면서 겸사겸사 하는 것이니 타인의 신발도 정리해 보자고 마음을 먹으니 모든 행동이 자연스러워졌다.

슬리퍼와 신발 정리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나는 또 다른 유무념으로 공부하게 됐다. 공중화장실 세면대에 비눗물이나 물이 매우 어지럽혀진 경우를 종종 본다. 이럴 경우에는 손바닥으로 세면대를 한 번 닦아주는 주는 자신을 발견한다. 젖은 손은 다른 손으로 대충 물기를 빼고는 휴지가 있다면 최소한의 양으로 한번 닦고 손수건으로 마무리한다. 바보 같은 일이나 우선은 누가 보지도 않고 자연스러운 가운데 내 마음이 편하니 그렇게 하기로 한다. 대종사님도 일제강점기에 열차 안에 화장실 모습을 보고 직접 청소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당시 생활수준과 공공의식을 생각해보면 그 열차 안 화장실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간다.

유무념 공부는 누가 시켜서 될 일이 아니다. 자신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하여 스스로 해야만 하는 공부다. 교당을 다니면서 교도라고 유무념 공부를 한답시고 나름의 방법으로 해왔지만 이번 주제처럼 집중적으로 오래한 유무념 조목은 처음이다. 그렇게 묵묵히 하다 보니 '토가 떨어진다'는 말이 절실히 느껴졌다.

유무념 공부는 한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3년여) 꾸준히 하다 보면 다른 것들이 보이게 된다. 거기까지 손이 미치게 된다면 그것은 억지로가 아닌 즐거움 속에 자연스레 이뤄진 것이다. 아주 미미하고 부분적인 일이긴 하지만 그 일이 아주 사소하더라도 지극하면 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일로 유무념 공부는 믿음(信)과 정성(誠)이 핵심임을 알았다. 믿음과 꾸준함이 서로 바탕이 되고 핵이 되어야 유념의 효과 즉 기질변화가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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