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말이 있다. 한 해를 열심히 달려온 지난 반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계획할 수 있는 여유와 회고의 시간이 여름휴가이자 여행이다.
혹자는 여행길에 한권의 책을 동반 한다고 하는데 역시나 나에겐 차를 대신할 만한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이 다행인지 행운인지 모르지만 행운에 한 표를 던진다.

인구의 절반가량이 여름휴가를 떠난다는 통계가 있다. 휴가는 새로운 출발이기도 하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의 특성상 차를 전공으로 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특별한 휴가 없이 수년째 휴가를 대신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차를 하는 사람들, 차와 함께하는 사람들, 차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 그리고 차 없이는 못 사는 차 애호가들이 전국 곳곳에서 차향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주변에서 쉽게 차를 접하게 되는 것에 감사할 즈음 시간은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건강을 챙겨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을 알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건강에 이상 신호가 생겼다는 얘기인지 아리송하지만 둘 다 포함하기로 하자. 주변의 공통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차가 있는 건강한 여행은 어떤 것일까. 첫 번째는 내면을 돌아보는 차밭여행이다. 이른 아침의 차밭은 어떤 형용할 수 없는 고요한 세계로 안내된다. 바로 차가 있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해 보는 것이다. 다랭이논처럼 펼쳐진 계단식 차밭의 평온한 행렬은 부족함 없는 반듯한 모습으로 자신을 돌아보기에 충분하다. 가끔씩 행운처럼 운무의 행렬에 동반하는 호사를 누릴 때의 충만은 어찌 표현해야 좋을까. 한 계단씩 들숨과 날숨을 교차하면서 현실의 무게를 내려놓고 걷다보면 내면의 세계에 좀 더 가까워지게 된다.

두 번째는 고요한 찻집기행이다. 여행의 쉼표역할을 하는 찻집은 여행자의 발길을 머물게 하는 이상적인 곳이다. 서로 다른 특색 있는 차들로 건강을 염려하는 여행자의 마음이 그곳만의 로컬푸드(local food)와 차 한 잔의 만남이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찻집 주변의 연방지에서 만나는 연꽃으로 마음의 평온을 대신해보는 것도 건강한추억이 될 수 있다.

찻집 주변의 연방지에서 만나는 연꽃으로 마음의 평온을 대신해보는 것도 건강한 추억이 될 수 있다. 바람이 스치는 대로 전해지는 백련의 향기로 인해 7월은 '연향의 계절'로 불린다. 여기에 〈부생육기〉에 나오는 운이의 마음을 담은 연차는 한여름의 더위를 눌러주는 더없이 향기로운 차이다. 운이의 연차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연꽃의 특성상 활짝 핀 연꽃은 해가지면 그 얼굴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다음날 더 짙고 깊은 향을 전한다고 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착안된 것으로 여겨진다.

먼저 비단주머니에 녹차를 한 숟가락 담아 봉한 다음 해지기 전 비단 녹차주머니를 연꽃에 넣어 두게 되는데 자연스레 연봉우리에서 하룻밤을 잠재우게 된다. 다음날 연봉우리가 만개하면 전날 저녁에 넣어둔 비단 차주머니에서 흡착된 연향기가 꽃처럼 피어나게 된다. 사랑하는 부군을 위해 매일 같이 연차를 만들었다고 하니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주변 찻자리에서 비단 주머니가 아니더라도 면포로 만들어진 찻주머니를 연꽃이 있는 연지에 띄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나 정성을 기울인 운이의 연차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차를 대하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우주의 진리가 원래 생멸 없이 돌고 도는 것이라 했는데 이제 차 한 잔 마주하며 쉼표와 마침표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다.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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