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준영 교무/양정교당

나는 첫 발령을 받고 곧바로 '원 아카데미 학원'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인성교육을 시작했다. 이제 막 출가한 내가 아이들에게 중요한 인성교육을 담당하게 된 것에 막막한 기분도 들었지만, 인성교육 관련 자료와 논문을 찾아가며 준비에 정성을 쏟았다.

그런데 당일이 되고보니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와 너무나도 달라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학원 선생님들도 다루기 힘들다는 5학년 아이들이 대부분인데다가, 원불교의 '원'자도 모르고 있었다. 더욱이 인성교육 시간에 주는 간식을 먹고 자기들끼리 놀기 위해 온 것 같은 분위기와 느낌은 충격적이었다. 이것이 현실인가 싶을 정도였다.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이런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시간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정말 '이 일을 어찌할꼬'가 절로 나왔다.

그 후로 아이들 인성교육을 위해 나름의 준비와 교육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제멋대로였다. 그러다보니 나는 인성교육 시간이 다가오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인성교육이 마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행복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린이·학생법회 모두 걱정이긴 했지만 인성교육 시간만큼 부담스럽지 않았다. 걱정되는 인성교육 시간을 위해 스승님께 문답감정도 하고, 도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고 배우면서 아이디어를 얻어가며 스스로 연마를 시작했다. 이렇게 수많은 시도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나씩 인성교육의 틀을 만들어갔다. 그것은 나에게 아이들을 이끌어가는 법, 원불교를 전혀 모르는 아이들에게 교법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법 등을 체득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나는 안 그랬는데 왜 저러는 거야?'하며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기도 했는데, 나 역시 저 나이 때 저렇게 지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도 그 시절에는 학원에서 떠들기도 했고, 수업받기를 싫어했다. 생각해보니 반성이 많이 되면서, 여기 말괄량이 여학생들이 인정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실 아이들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밝고 귀엽고 순수했다. 다만 산만할 뿐이었고, 그 나이에 보통의 아이들이 대개 그러했다. 이런 생각의 과정을 거치다보니 아이들에게 점점 애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후 아이들과 만남이 수월해질 수 있었다. 또 아이들에게 정성을 들이면 들일수록 정도 깊이 쌓여갔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인성교육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과 매우 친해졌음을 알게 됐고, 아이들이 정말 사랑스럽고 귀여워보였다. 그동안 내가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줘도 아이들이 듣지 않은 것 같았지만, 자세히 알고보니 아이들은 장난치면서도 다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때때로 속 깊은 말, 의미있는 말을 해서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지금은 인성교육 진행하는 것이 전혀 부담되지 않는다. 오히려 즐겁다. 이미 3년 반이라는 시간이 쌓였기에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 탓일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이 지쳐서 인성교육을 할 수 있을까 싶은 날도 있지만, 막상 아이들을 만나면 기운이 생기고 즐거워진다.

인성교육도, 어린이·학생 교화도, 진실과 정성으로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감상이 들었다.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 정말 아이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함께하는 태도와 자세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준다면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지만 그 진심과 정성을 모를리 없다는 사실을 깊이 느꼈다. 교화란 이러한 진심과 정성을 다해 다가가는 것이며 함께하는 것임을 아이들을 통해 깊이 깨달아 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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