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초가을 밤이었다. 방에 모기장을 치지 않고 시자가 모기약을 가져다가 뿜기 시작하였더니, 정산 종사께서 '그만해 두어라' 하시는데 그치지 않고 자꾸 뿜었다. 그때 벽에 걸린 액자나 괘종시계 뒤에 벌들이 수없이 의지하고 살았는지 약의 독 기운으로 쏟아져 나와 온 방안을 윙윙거렸다. 누워 계셨던 정산종사께서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크게 꾸짖으셨다. '그만 뿌리라 할 때 그만 뿌릴 일이지, 하나도 죽지 않게 다 살려 내라.' 이때 정산종사께서는 무척 마음이 아프신 표정이시었다. 시자는 사방 문을 열고 비와 먼지받이로 벌을 쓸어 담아 모두 밖으로 내어보냈다." (<한울안한이치에> 법문과 일화 10.자비행 27절.)

여름하면 떠오르는 키워드가 참 많다. 휴가, 더위, 바다, 수박, 보양식 등등 많은 단어 중에 여름을 대표하는 하나를 찾는다면 나는 단연 모기가 아닐까 싶다. 여름이면 나타나는 적이자 동지인 모기는 나의 수행에 최고 방해꾼이다.

오늘도 새벽 좌선 때 모기 한 마리를 이겨내지 못하고 오직 한 생각 모기의 윙윙 소리에 집중하다가 끝이 나버렸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모기는 나에게 은혜일까? "한 제자가 여쭈었다. '독사가 어찌 동포은이 되겠습니까?''미물 곤충이 있어야 하겠느냐, 없어야 하겠느냐?' '있어야 하겠습니다.''그러면 은혜가 아니겠느냐?'" (<한울안한이치에> 법문과 일화 3.일원의 진리 13절)

대종사는 천지 만물 허공 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다고 했다. 나에게 득이 되든 해가 되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은혜인 것이다. 방 안에 눈에 띄는 모기를 생각 없이 손으로 잡은 적이 있다. 아마 세어보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때 나는 정산종사와 같이 마음이 아프기는커녕 드디어 잡았다는 안도감과 시원함이 있었다. 하찮은 미물 곤충일지라도 함부로 죽이지 말고 살리라는 정산종사의 법문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지은 죄업의 반성과 함께 성인의 자비행에 대해서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자비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서 베푸는 것이라 한다.

우리는 동포은의 실천으로 자비행을 할 수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금수 초목 미물 곤충도 나와 한 몸으로 여겨 함께 아파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그 마음이 자비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모기 한 마리를 잡겠다고 온 방에 약을 뿌리고 윙윙 대는 모기에게 짜증을 내고 수행의 방해꾼으로 탓을 하고 있었다. 비단 모기만이 아니다. 모기살충제로 인해 눈에 안 보이는 수많은 미물 곤충들의 목숨 또한 잃게 했을 수도 있다. 내가 잡은 건 모기 한 마리지만 내가 지은 업은 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니 퍽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모기는 은혜일까라는 의심보다 모기와 내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 동포 아님이 없고 혼자서 살 수 없다. 인터넷에 모기에 대한 이런 문구를 보았다. "모기 함부로 죽이지 마라! 그래도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애는 걔 밖에 없다!" 모기는 이제 더 이상 적이 아닌 동지이며 은혜이다. 정산종사의 자비의 심법을 본받아 죽어가는 모든 미물들을 보며 아파할 줄 알고, 감사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광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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