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동양 최고 지혜의 서인 〈주역〉은 일원상 진리 및 은(恩)사상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주역〉은 불교처럼 생성소멸하는 우주의 흐름 속에서 인간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전제 한다. 이런 만물의 변화를 천지음양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성인은, 하늘과 땅과 인간의 도리가 다 갖춰진 이 가르침을 활용해 천하 일을 도모한다. 그리고 안으로는 천지와 같은 덕과 일월과 같은 밝음으로 이상적인 인격을 성취하고자 정성으로 노력한다. 천지합덕의 부처를 이루는 것이다.

불교의 깨달음과 같이 〈주역〉의 우주의식은 곧 깨달은 성인의 경지이기도 하다. 그 경지에서 볼 때, 우주가 태극일기(太極一氣)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 세계가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 만법귀일의 이치인 셈이다. 〈주역〉을 해설한 계사전에서는 "낳고 또 낳는 것을 역이라고 한다"고 설한다. 이는 〈대종경〉 교의품에서 "일원상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사은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만유"라고 한 것과 상통한다. 깨달으면, 하나의 세계 안에 생생약동하는 은의 세계가 바로 이 모든 존재인 것이다. 은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 그 자체를 말하며, 처처불상의 세계 아님이 없는 이 현실을 말한다.

〈주역〉은 또한 천지인 삼재(三才)의 도를 두루 갖추고 있는 지혜의 보물 창고이다. 설괘전에서는 "옛날 성인이 역을 지어 성명(性命)의 도리에 따르라고 했으며, 따라서 음양으로 하늘의 도를 세우고, 유강(柔剛)으로 땅의 도를 세우고, 인의로 인간의 도를 세웠다. 삼재를 중첩해서 역이 6획의 괘로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설한다.

소태산은 인도품에서 떳떳하게 행하는 것을 도라 하나니, 하늘이 행하는 것을 천도, 땅이 행하는 것을 지도, 사람이 행하는 것을 인도라고 설한다. 그리고 어느 곳 어느 일을 막론하고 오직 은혜가 나타는 것을 덕이라고 하며, 하늘의 도를 행하면 하늘의 은혜가 나타나고, 땅의 도를 행하면 땅의 은혜가, 사람의 도를 행하면 사람의 은혜가 나타나서 천만가지 도를 따라 천만 가지 덕이 화한다고 한다.

이처럼 천지인 삼재의 도는 천도·지도·인도를 말하며, 양쪽 다 천지인의 덕성을 궁극의 가치로 여긴다. 결국 〈주역〉과 소태산의 가르침을 종합하면, 이 우주의 창조적 능력인 법신불의 무한권능과 이를 품부 받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무한한 가치를 우리가 긍정하고 찾게 될 때 비로소 무한한 은혜가 생산된다고 할 수 있다.

계사전에서는 "역은 성인께서 심오한 이치를 다하고 변화의 기미를 살핀 것이다. 심오한 이치이므로 천하 사람들의 뜻에 통하고, 변화의 기미를 살핀 것이기에 천하의 일을 능히 이룰 수 있다"고 설한다. 소태산 또한 인도품에서 "깨달은 사람으로서 능히 유무를 초월하고 생사를 해탈하며 인과에 통달하여 삼계화택에 헤매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한 가지 극락에 안주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대덕을 성취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러한 양 세계의 소통은 현대 지성인들이 주장하는, 덕의 부활이 행복을 낳는 원천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성공으로는 자신의 완전한 의미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행복은 일차적으로 덕을 행하는 자신의 인격에 대한 만족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성인은 이 세계를 낙원화하는 대덕으로 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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