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분별성 일깨워준 내용증명서

▲ 이혜인 교도

퇴근을 하고 너무 피곤해서 자고 있는데 아파트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왔다. 차를 빼라고 한다. 잠결에 알았다고 말하고 경비실 앞으로 내려갔다. 내 차가 아니었다. 퇴근 때 분명히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것 같은데 경비아저씨가 뭔가 착각했나 보다 하고 올라와서 다시 누웠다. 조금 있으니 또 인터폰이 와서 차를 빼라고 한다. 앗 경계다. 나는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내 차는 거기에 댄 적 없다고 하면서 인터폰을 끊었다. 몇 분 후 또 인터폰이 왔다. "뭐야" 하면서 인터폰을 받으니 대답은 없고 이내 끊겨버렸다.

화가 오르기 시작한다. 내 차가 아니라는데도 인터폰을 계속하는 경비원에게 따지러 내려갔다. 멀리 보이는 경비아저씨를 보는 순간 따지면 뭐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 도로 올라왔다. 집에 왔는데도 여전히 화는 가라앉지 않는다. 확인도 안 해보고 세 번씩 인터폰을 하면서 오라 가라 하다니,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다음날 아파트 동 대표와 관리소장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냈다. 아파트 내 주차관리가 잘 안 되고 있고 이것 때문에 입주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책임을 물었고 다음 달까지 주차관리가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시정을 하라는 내용이다. 보내고 나서 생각해 보니 괜히 힘없는 경비아저씨에게 불이익이 갈까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며칠 뒤 아파트 관리소장이 전화로 와서 사과했다. 그제서야 화가 좀 풀리는 느낌이 들었고 원인 유발은 경비아저씨가 했지만 아파트 주차관리를 위해서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 보니 내 행동이 되돌아봐진다. 경비아저씨가 불만이었으면 그에게 화를 내면 될 일을 내용증명까지 보내다니. 정작 당사자에게는 화를 못 내고 공적인 경로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었구나. 오히려 다른 주민을 위한 공익심에서 나온 일이라고 내 스스로를 합리화하기까지 했구나. 이 경계로 나는 교묘하게 화를 숨기는 선량한 사람이고 공익심으로 나를 포장하려는 비겁한 사람인 것 같이 느껴져서 기분이 안 좋았다.

문답감정 : 차는 많고 주차공간은 부족하다 보니 아파트마다 주차 시비가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시비는 흔하지만 이런 시비로 공부하는 사람은 참 드물고 귀한 세상입니다. 공부하는 연도님은 그래서 귀한 분입니다. 인터폰이 오는 경계 따라 화가 나는 마음을 보고 일단 '앗 경계다' 하고 잘 멈추셨네요. 멈추는 힘. 정말 쉬운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잘 안 될 때가 허다하지요. 앗 경계다. 공부할 때가 돌아왔다. 앗 멈추자 하면서 마음을 챙기는 공부. 그게 삼대력을 쌓는 공부가 아닐까요. 세 번씩이나 인터폰을 받는 상황에서 화가 안 날 사람은 없습니다. 화를 내지 말자가 아니라 화가 났을 때, 아 지금 내가 경계구나 알아차리고 이렇게 공부하시면 됩니다. 나는 분명히 지하주차장에 주차했는데 경비아저씨가 착각하고 인터폰을 한 것은 100% 경비아저씨가 잘못한 것이다 하는 생각이 바로 나의 분별성입니다. 100% 잘못한 경비아저씨가 있으면 100% 잘못이 없는 나도 똑같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비가 들끓은 자리가 바로 이런 자리이지요. 나는 맞고 당신은 틀리고 나는 옳고 당신은 그르고 등으로. 다행히 이 사실을 연도님은 내용증명서를 보내고 나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나를 공부시키는 소중한 내용증명서입니다. 교묘하게 화를 숨기는 선량한 연도님도 화를 버럭버럭 내는 불량한 연도님도 공익심을 앞세우면서 은근히 나의 이익을 도모하는 비겁한 연도님도 무아봉공으로 정법회상의 길을 지금 묵묵하게 걸어가고 계시는 훌륭한 성자이신 연도님도 다 원래자리가 그대로 드러난 진리의 모습입니다. 다시 일상수행의 요법 1조가 생각 나네요. 연도의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한 마음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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