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응주 교무/법무실
탐진치 삼독심은 욕망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색욕을 금한 뜻은 도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佛告諸沙門하사대 愼勿視女人하라 若見無見하야 愼無與言하며 若與言者인댄 勅心正行하야 曰- 吾爲沙門이라 處于濁世나 當如蓮花하야 不爲泥所汚리라하야 老者는 以爲母하고 長者는 以爲姉하며 少者는 如妹하고 幼者는 如女하야 敬之以禮하며 惟觀不淨種하야 以釋其意矣니라.

"부처님께서 여러 제자에게 말씀하시되 삼가 여인을 보지 말라. 만일 볼지라도 보지 않은 것 같이 하여 삼가 더불어 말하지 말라. 만일 더불어 말을 하게 되면 곧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단정히 하여 스스로 생각하되 '나는 도를 닦는 사람이라 비록 탁한 세상에 처하나 마땅히 연꽃과 같이 하여 진흙의 더럽히는 바가 되지 아니하리라.' 하여 늙은 여인은 어머니 같이 생각하고 젊은 여인은 누이 같이 생각하고 어린 여자는 딸 같이 생각하여 예로써 공경할지니라. 또는 이 몸이 필경에 공한 것과 현재에 부정한 것을 보아서 곧 그 색심을 놓을지니라."



신물시여인(愼勿視女人)은 삼가 여인을 보지 말라는 말씀이다. 수도를 하고자 뜻을 세운 사람은 이성에 대한 욕망을 절제할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도 보지 않고 헤어져 있으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듯이 자꾸 쳐다보면 없던 마음도 싹트기 때문이다.

약견무견 신무여언(若見無見 愼無與言)은 만일 보더라도 보지 않은 것처럼 하고 삼가 말을 나누지 말라는 말씀이다. 어떻게 눈을 뜨고 있는데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보았다 하여도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무시하라는 의미이다. 한번 두 번 쳐다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말이 오가기 때문에 쳐다보지도 말고 말도 나누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약여언자 칙심정행(若與言者 勅心正行)은 만일 더불어 말을 하더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어쩔 수 없이 대화를 해야하면 마음가짐과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여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이성간의 만남에서 수도인이 먼저 색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수도인을 유혹하려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몸과 마음가짐을 철저히 하지 못해 빈틈이 보인다면 유혹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처우탁세(處于濁世)란, 혼탁하고 더러운 세상에 산다는 뜻으로 우리 중생이 살고 있는 세계를 탁세라고 한다. 우리는 탐진치의 삼독심이 주가 되어 오직 욕심과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 세계에 살고 있다.

당여연화 불위니소오(當如蓮花 不爲泥所汚)는 마땅히 연꽃과 같이 더러운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는 뜻으로 수도인의 표상인 연꽃 같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는 말씀이다. 흔히 연꽃은 깨끗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지만 그 꽃은 다른 것들보다도 더 깨끗하고, 더 아름답듯이 오탁악세에 살아가지만 세상을 맑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수도인이다.

노자이위모 장자이위자 소자여매 유자여여(老者以爲母 長者以爲姉 少者如妹 幼者如女)는 내가 만나고 있는 여인이 늙은 여인이면 어머니처럼, 나보다 나이가 위인 여인은 누나처럼, 나보다 나이가 적은 여인은 여동생처럼, 어린 여자아이는 딸처럼 생각하라는 말씀이다. 모든 이성을 이처럼 부모, 형제자매, 자식처럼 생각한다면 어찌 마음속에 색심이 솟아날 수 있겠는가?

경지이례 유관부정종 이석기의의(敬之以禮 惟觀不淨種 以釋其意矣)란, 여인을 대할 때 공경으로써 대하고 오직 육체의 겉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속은 깨끗하지 않다는 부정관(不淨觀)을 통하여 그 색심을 놓아 버리라는 말씀이다. 부정관이란 이성에 대한 탐욕을 없애기 위한 수행방법으로 시신이 부패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육신의 덧없음을 깨우치게 하는 방법으로 특히, 이성에 대한 욕심이 많은 중생이 닦아야 하는 수행법이다.

몇 년 전 태국에 갔을 때 스님들은 여자 신도와 손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같이 세상이 열려간다 해도 필요한 계율은 꼭 지키는 고집스러움이 더 마음에 다가왔다. 그런데, 다음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자 신도가 스님에게 공양물을 직접 올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공양물을 직접 올리다가 스님의 손과 닿을 수 있으므로 남자 손을 거쳐서 스님에게 드려야지 직접 스님에게 드려서도 안되고 스님도 여신도가 주는 공양물을 직접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과거 2500년 전 부처님 계문을 글자 그대로 지키는 것이 지금의 시대에 맞는 것인가라는 의문과 혹시 부처님의 본의는 없어지고 형식만 남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인에게 색을 멀리하라는 부처님의 뜻은 색을 극복하지 못하고는 도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한정된 에너지가 있다. 그 에너지의 일부가 색으로 흐를 때 서원을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은 당연히 약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색욕을 가지고 있으면서 도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부처님이 수도인에게 색욕을 금하게 한 이유는 수도인들이 결혼하지 않고 정절을 지키게 함이 목적이 아니라 색욕이 도를 이루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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