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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치유는 커녕 '화'만 키운 위안부합의 전면 재검토
화해·치유는 커녕 '화'만 키운 위안부합의 전면 재검토
  • 이은전 기자
  • 승인 2017.08.11
  • 호수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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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학순 할머니 위안부 피해자 증언. 사진=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12·28 위안부 합의 재검토 TF 출범, 법적 책임 촉구
한국 75%-일본 53.8% "위안부 문제 해결 안 됐다"



"그동안 말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밝혀져야 할 역사적 사실이기에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속이 후련합니다. 지금도 일장기만 보면 억울하고, 가슴이 울렁울렁합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요즘도 일본이 종군위안부를 끌어간 사실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14일 국내 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증언했다. 수십 년 동안 제기하지 못했던 위안부 문제가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공론화 됐다. 할머니는 다달이 정부에서 쌀 10kg과 3만원을 받는 생활보호대상자였다. 할머니는 "정부가 일본에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와 배상 등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하며 참담한 기억을 세상에 알린 지 6년 뒤인 1997년 숨졌다.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합의

그리고 2015년 12월28일. 한국과 일본의 두 외교장관이 기자들 앞에 섰다. 성실한 이행을 전제로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합의 타결을 선언했다. 2015년 11월, 3년 반 만에 재개된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조속한 협상 타결을 위한 논의 가속화'에 합의했다.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12·28 위안부 합의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합의 직후부터 논란은 계속됐다. 상당수 피해자 할머니들은 합의를 거부했다. 일본 내에서는 위안부 관련 망언이 멈추지 않았다. 또 합의에 따라 피해자 명예 회복 등을 위해 10억엔을 내놓고 화해치유재단이 설립된 이후로는 일본 내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등에 대한 철거 주장이 계속 나왔다. 이 과정에서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TF, "합의 내용 전반 확인할 것"

이 같은 반발 여론에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주요 후보가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재협상 또는 파기를 공약했고 결국 새 정부 출범 두 달여 만에 검증 작업이 시작됐다.

정부는 7월31일 외교부 장관 직속의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가 출범했다고 밝혔다. 이 TF에는 한일관계, 국제정치, 국제법, 인권 문제 등 각 분야의 민간위원과 외교부 관계자 등 총 9명이 참여한다.

외교부는 "TF는 위안부 합의 관련 협의 경과 및 합의 내용 전반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평가하기로 했으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견지하면서 위안부 피해자 및 관계자들의 의견도 청취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소녀상 이전 및 철거 등과 관련해 이면합의가 있었는지,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의 내용에 '최종적', '불가역적'이라는 내용이 왜 포함됐는지 등을 밝혀낼 예정이다. TF는 올해 안에 최종 결과를 도출하고 이를 공개할 방침이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은 논평을 내고 "외교부는 피해자·지원단체와 소통 없이 오랜 시간 동안 이 문제를 연구해온 법·역사·여성학자들은 배제한 채 국제정치·외교 전문가 위주로 TF를 구성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재단 쪽은 이어 △12·28 합의 졸속 발표 이유 △합의 도출 과정 △화해·치유재단 설립 및 10억엔 거출 경위 △소녀상 관련 일본 쪽 요구사항과 한국 정부 대응 등 7개항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촉구했다.
▲ 창원명곡고의'작은 소녀상'은 김홍석(법명 진현·창원교당)교사가 기념 문구를 작성했다.
12·28 합의, 법적 책임·사과 빠져

12·28 합의의 치명적인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노 담화(1993년)-무라야마 담화(1995년)-간 나오토 담화(2010년)를 거치며, 사과와 반성을 넘어 책임을 지는 모습으로 다가서던 일본의 태도는 12·28 합의로 다시 20년 전 '사과'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일 양국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풀기 위해 2014년 4월 국장급 협의를 시작했다. 당시 협의의 주체는 외교부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막판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직접 나서 합의 협상·타결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석달만 시간 여유를 주면 개선된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박 전 대통령에게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합의 체결 이듬해인 2016년 1월 피해 할머니들은 "사과 없는 일본 쪽 10억엔은 필요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부는 같은 해 7월 말 이 자금을 바탕으로 화해·치유재단을 출범시켰다. 한달 뒤인 지난해 8월 강일출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 할머니 12명은 12·28 합의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한국 55.5% 위안부 합의 '부정적'

7월21일 한국의 민간 연구기관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비영리단체 겐론(言論 NPO)이 일본 도쿄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한일국민 상호인식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한국인은 55.5%가 부정적으로 평가하고(긍정평가 21.3%), 일본인은 41.8%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부정평가 25.4%). 또한 한국인의 75%, 일본인의 53.8%는 양국 합의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합의에 대한 한국인의 불만에 대해 일본인의 49.3%가 '이해할 수 없다.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 22.6%가 '왜 불만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즉 71.9%가 한국과 한국인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답해 양국 국민의 뚜렷한 시각차를 나타냈다.
▲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염원을 담은 팔찌. 사진=정의기억재단 홈페이지 갈무리
생존자 37명, 평균 연령 90세 넘어

일주일 후면 제72주년 광복절을 맞는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매주 수요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지만 지금껏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김군자 할머니가 타계하면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중 생존자는 37명으로 줄었다. 위안부 할머니 평균 연령은 이미 90세가 넘었고 이대로 세월이 또 지나가면 생존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광복된 지 70여 년을 버텨온 일본이 향후 70년을 또 버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돌이킬수록 치욕스럽고 굴욕적인 합의를 이제라도 제자리로 되돌려놓는 것이 한평생을 고통과 울분 속에 보낸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국가적 위신을 세우고, 일본이 국제사회에 떳떳하게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될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로부터 '법적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를 끌어내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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