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혜범 교도/월명교당
서사극 이 일을 어찌 할꼬, 교조 일생 경륜 깊이 성찰
사은께서 준 능력과 지혜, 청소년 교화에 힘쓸 것

법회를 마치고 연극에 관심이 많은 하상덕 교무님의 음덕으로 교도들과 솜리예술회관에서 펼쳐진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일대기의 대서사극, '이 일을 어찌 할꼬'를 관람했다. 이 때 큰 감동과 감격에 휩싸여 원불교인으로서 나의 자존과 가치를 성찰하는 계기로 여겼다.

내가 장모님으로부터 입교연원을 받고 반세기 넘게, 원불교를 믿고 공부한 사람으로 그 자존과 가치에 대한 뚜렷한 대안이 없이 지내온 사실이 부끄러웠다. 이것은 나의 성격이나 원불교에 대한 종교적 가치, 원불교인으로서의 소명의식 부족이 원인이겠으나 결정적인 잘못은 내 신심이 낮은 것에 원인을 찾았다.

이러한 원불교인으로서의 미완성이 8년 전에 쓴 나의 소품 대종사 십상동화 〈새 부처님 우리 대종사〉를 〈원불교신문〉에 연재하면서부터 약간은 신심이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이 짚히기 시작한다. 1화, 2화 글을 연재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행해지는 〈교전〉 봉독과 교사탐색과 탐구활동에서 나도 모르게 성숙되어간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여기에 이번에 '이 일을 어찌 할꼬' 대서사극을 관람하고 나서는 원불교인으로서 존재와 가치를 더욱 두렷하고 새로운 원불교를 남 앞에 정정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일원은 법신불이니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요, 일체중생의 본성이다"란 인류 구원의 대 진리를 이윤택이란 걸출한 연극연출가와 윤정접·이원희라는 훌륭한 배우의 역동감 넘치는 연기력으로 대종사님의 실체가 어떠하며 그의 철학과 사상이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 줬다. 연극은 매우 웅장하면서도 고요가 깃들었고, 은은하고 부드러운 옛 정서가 새록새록 솟아오른다.

한 세기, 100년의 시공을 넘나드는 인간적 고뇌가 생생했고, 당시 선지자들과의 교감을 주고 받는 수준 높은 연출, 배경, 음악, 모두가 돋보였다. 소태산 대종사의 십상을 매우 고전적이면서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일원세계를 엮어낸 이윤택 감독과 스태프, 훌륭한 출연진들에게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보낸다.

소태산 대종사 십상은 일제강점기 우리민족 최대의 수난기였다. 그 참담했던 암울한 시대를 이겨내고 2세기 새 세상 주세불로 우뚝 선 소태산 대종사 우리 대종사님! 모닥불이 성자의 심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면 서막의 모닥불은 헐벗고 굶주린 수난기 성자가 아니었던가.

삭풍 몰아치는 아침굴뚝에 연기 없는 시골 초가집 사람들에겐 생명의 씨앗이었다. 모닥불은 춥고 가난한 자의 화로였던 것이다.

서막에 불어오는 민족의 애환과 숨결이 스며드는 구음, 창가, 판소리 마당극이 내 가슴을 술렁이게 했다. 이어진 구사고행 좌절과 강변입정 등을 적재적소에서 연기력을 과시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물아의 경지에 오르게 한다.

연극은 주연 아닌 바랭이가 극을 끌고 가는 것에 놀랍다. 그녀는 장항대각(獐項大覺) 제일의 공로자다. 장항대각이 성자의 길로 들어선 원불교 탄생의 획기적 사건이 아니었던가? 바랭이네의 대종사님을 성자로 참 스승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원불교가 은혜의 종교, 사은의 종교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법신불 사은님, '이 일을 어찌 할꼬'를 만든 이윤택 연출가와 스태프, 출연진, 교단 관계자들에도 더욱 건강과 행운을 주시옵소서. 불제자 황혜범은 '이 일을 어찌 할꼬'를 보고 난 후 원불교인으로서 자존가치를 세우기 위해 정성을 다해 두 가지 일을 하렵니다.

하나는 더욱 정의로운 곳에서 신분의성 분발심을 발휘한다. 또 하나는 사은께서 주신 나의 능력과 지혜를 청소년 교화에 바치련다. 거룩하신 천지·부모·동포·법률 사은님이시여, 부족한 저에게 거룩한 '은생수'를 내려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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