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보은 교도/둥근마음상담연구소 부소장

동작Wee센터에서 만난 고2 남학생 B는 한쪽 귀에 검정색 귀걸이를 착용하고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앉은 상태였고, 먼저 인사한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고개를 뒤로 젖혀버렸다. 나는 당황스러워 뒷말을 이어가지 못했고 그런 내 모습을 B는 탐탁찮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애써 배웠던 상담 이론은 날아가 버렸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초면의 성인을 대하듯 정중하게 대하기로 했다. B의 맞은편으로 가서, "많이 피곤한 모양이네? 어제 할 게 많았니?" 라고 조심스럽게 묻자 예상 밖으로 B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 시간은 원래 야외 신체활동시간이었다. "지금은 배드민턴을 치기로 한 시간인데 너가 피곤해 보여서 어떡하지?" 라고 물으며, 속으로 제발 하자고 대답해주길 바랐다. 그러자, B는 "아, 씨×, 쉴 수가 없네" 하면서도 의자에서 일어나며, "어디 가서 쳐요?"라고 물어줬다. 서울회관 앞마당 차에 피콕이 떨어지면서 불만을 표하던 아저씨와 시비가 붙을 뻔하기도 했지만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배드민턴 실력이 월등하여 피콕을 주으러 다니는 나의 모습을 즐기는 것 같았으며 물을 나눠 마시고 시간을 끝냈다.

그 시간 이후 B는 상담이 아니어도 나와 농담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고, 자신의 꿈에 대해서는 눈을 반짝이며 내 말에 귀기울이고 질문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회관 내에서의 금연규칙을 지키는 변화도 보였다. B는 해체된 가정, 누나의 자살 등으로 외상후 스트레스로 우울감이 높았고, 학교폭력, 학교 무단결석, 교내 흡연 등의 품행의 문제를 일삼는 자신에 대해 미래가 없다는 절망감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Wee센터의 심리검사, 개인상담, 모래치료, 진로탐색 등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이해, 꿈찾기를 통해 시선을 끄는 외모, 태권도 유단자, 발군의 운동신경을 강점으로 하는 자신의 신체적 유능감을 발견하면서 보디가드가 되기 위해 전문대학을 가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교육을 끝냈다. 6개월 후에 추후 상담의 일환으로 B에게 학교생활의 적응, 미래 계획에 대한 점검 등을 묻자, 무기력한 목소리로 학교는 그만두었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일순 실망감이 들었지만, 변경된 목표도 잘 수행하기를 지지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1년쯤 후, B가 독립영화 영화배우가 되어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찾아와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영화에 출연하면서 꼭 이 사실을 Wee센터에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당시 모든 선생님들이 B의 앞날을 축복해주고, 한편으로는 내담자의 변화를 실현했다는 보람을 만끽했다.

지난 원불교상담학회 창립총회 및 세미나에서 이경열 교무님은 마음공부 상담자가 갖추어야 할 태도로써, 본성에 대한 믿음,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 분별심과 주착심 없는 텅빈 마음이라고 했다. 학교폭력, 규칙 위반 등 품행의 문제들은 B의 원래 모습이 가정해체, 누나의 자살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오는 왜곡되고 변형된 모습일 뿐, 원래 모습 그 자체는 순수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을 갖고 싶은 본성에 대한 믿음이 B의 긍정적 변화를 가능케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내담자에 대한 고정관념, 선입견 등에 얽매이지 않는 분별심과 주착심이 없는 상담자의 텅빈 마음이어야 가능한 것이다. 선입견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받는 경험이야말로 내담자의 자기 긍정과 변화의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B와의 만남 이후 나는 상담이란 인간의 변화에 참여하는 위대하고도 중요한 일이라는 자각에 힘입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많은 내담자를 만나지만, 이따금 내담자의 태도나 더딘 변화에서 나의 상담자로서의 태도를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