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지명 교무의 시 '조각사'.
소태산 대종사는 일제말기인 만년에 교단3대사업목표를 천명한다. 교화·교육·자선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자선(慈善)은 오늘의 사회복지에 해당한다. 교단에 들어온 정재(淨財)를 공익사업으로 사회에 환원시키고, 이용시설인 복지기관과 수용시설인 복지시설을 마련하며, 봉공회·봉사대 등을 조직하여 봉사활동을 전개하는 일이다. 교단에서 이를 관장하는 부서가 교정원의 공익복지부이다.

이런 교단적인 체제와 관심 속에 공익사업·봉사활동은 역사와 전통을 이뤄왔다. 해방 후 거교적으로 전개한 전재동포구호사업에서부터 농촌봉사 계몽활동, 심장병어린이돕기 자전거전국순례운동, 남북한삶운동과 국내외 의료봉사 등이 계속돼 왔다. 제주교화가 예비교역자들의 봉사활동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좋은 예인데, 특히 원기47년(1962)~49년(1964)까지 군부에 의해 원광대학이 학림으로 강등되는 아픔이 있어서 이 활동은 절실한 데가 있었다. 제1회 전국대학생봉사대상(1964)에서 예비교역자들을 비롯한 봉사활동으로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은 것은 대학의 홍보, 그리고 발전에 밑거름이 됐다.

당시 봉사활동을 이끌면서 캠퍼스의 천사로 불리던 이가 백지명(天陀圓 白智明, 1937-1973)교무이며, 그 유작집이 원기59년(1974) 발간된 〈조각사〉이다. 약학대학학생회 편, 원불교출판사 발행의 이 책은 국판 243쪽이다. 전후 4편으로, 시 61편, 칼럼 11편, 논설 5편이며, 후인들의 추모글 11편이 수록되었다.

백교무는 이화여대 약학과와 동 대학원을 나와 원광대학 약학과 개설시기 교수로 재직하면서 봉사써클 '삼동회'를 이끌었다. 정산종사의 삼동윤리사상으로 무장한 의료봉사단이었다. 그의 시는 이렇다.

'나는 조각사입니다./ 아닌 마음 쫓아내는 석수쟁이외다./ 살아 꿈트리는 이 마음/ 살아 움직이는 이 몸을/ 갈고 닦고 매만져서/ 원만한 여래를 아로 새리리라. (중략) 향불 가늘이 타는 속에/ 언젠가 임의 미소 감도는 날/ 내 살뜰이 조각한 님께/ 불후의 미소를 가만히 불어넣으렵니다./ 나는 한낱 이름없는 조각사/ 돌을 쪼는 석수쟁이가 아니외다./ 어제도 또 오늘도/ 온 생명의 안팎/ 일원(一圓)을 아로 새기는 조각사외다.'('조각사' 부분)

인자한 얼굴에 잔잔하게 미소띤 모습, 그 고귀한 자태가 봉사써클을 통해 주민들과 늘 함께 있었다. 가녀리면서도 강직한 어머니닮은 교무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사명감으로 불타고, 주민들은 감동으로 하나되었다. 그런 스승을 잃은 젊은이들은 교당을 찾고, 삼동회를 통한 봉사활동과 장학사업 등으로 유지를 계승하였다.

/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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