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불교 교무인 김복인 총장은 템플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줄곧 미국교화에 매진해 왔다.
"현지인 교도 출석률 한인 추월, 교화 패러다임 주목"

대학원 90여 명 재학, 침구학과 인기
다양한 장학혜택으로 미국 교화 도와
좁은 캠퍼스 이전이 대학원 당면과제


9월1일이면 개교 15년을 맞게 되는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는 미국교화를 넘어 영어권 교화, 교단의 세계화를 지향하며 설립됐다.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미주선학대학원이 펜실베니아주 교육부 승인을 받아 출발했지만 초기의 교육환경은 초라하기만 했다. 뚜벅뚜벅 앞만 보고 쉬지 않고 걸어온 미주선학대학원. 현재 대학원은 정교수 7명, 시간강사 54명, 행정직원 17명으로, 작지만 탄탄한 대학원으로 성장하고 있다. 학교 설립 초기부터 실무를 담당하며 대산종사의 경륜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서원으로 한 우물을 파온 김복인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이메일 인터뷰로 그간의 어려움과 학교의 비전 등을 들어봤다. 대산종사의 딸이기도 한 그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교무들이 탄생하면서 현지인 교화 패러다임이 한판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 미주선학대학원 설립 어떤 역할을 했나.

미주선학대학원은 대산종사의 일생 경륜사업이다. 추진 당시 좌산종법사께서 유업을 받들어 정연석 미주동부교구장, 필라델피아교당 오선도 교무, 그리고 나를 설립위원으로 임명했다. 행정, 법률 및 기타 제반 사항에 큰 역할을 해준 고원규 교무, 그의 정토이자 나의 친언니인 김복혜 교도가 주축이 돼 추진됐다. 나는 주정부 교육체계와 프로그램 관련 분야를 맡아서 학교 설립의 실무를 담당했다. 나머지 분야는 일을 나눠 각자 분담해 차근차근 준비했다.

-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현황은

원기87년(2002) 개교해 원불교학과, 선응용학과 2개 학과, 7명의 학생으로 출발했다. 그후 2005년 침구학과 설립, 2012 한약학 수료증 프로그램 개설해 4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재학생 90여명에 총동문은 200명이 넘는다. 원불교학과 졸업생은 38명으로, 재가 지도자 2명과 캐나다인으로는 송상진 교무가 배출됐다. 최초의 미국인 출가자인 원대선 교무도 우리 대학원 출신이다. 대학원 설립 이후 침구학과가 증설되기 전까지는 재정의 80%이상을 한국에서 후원받아 운영했는데, 침구학과 개설한 뒤로는 수업료 70%, 클리닉 수업 10%, 장기 투자이익금 10%, 후원금 10%로 비중이 바뀌었다. 장학재단은 송은, 성덕, 국정, 주법 장학금 4개가 있어서 원불교학과, 선응용학과 중심의 장학금, 원불교를 공부하는 현지인 학생들을 위한 원불교예비과정 장학금, 원불교 채플란시 장학금, 그리고 미국 교무들의 재교육 장학금으로 활용된다. 캠퍼스는 본관인 삼성홀과 기숙사 원남홀, 카멜홀 세 개의 건물을 있지만 학과가 증설되면서 현재 교육시설은 부족한 형편이다. 지난 5년 동안 건물확장을 위해 신규 캠퍼스 이전을 추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캠퍼스 이전은 우리 대학원의 중요한 과제다. 다행이 신타원 김혜성 종사가 열반한 후 유지를 받들어 유가족들이 신규 캠퍼스 마련 기금을 약조했고, 재가출가 교도들의 재정적 후원은 든든한 지원군이다.

- 선학대학원 설립이 미주 교화에 어떤 의미가 있나.

원기83년 미주선학대학원 설립의 필요를 논의하던 당시 이민 1세 중심의 교화만 해서는 비전이 없다는 자각이 있었다. 초기에 왔던 선배 교무들이 영어교육이나 제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미국에 건너가 너무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 초기 선배들의 희생적 가치를 더욱 드러내기 위해서는 준비된 시스템이 필요했는데, 이것은 언어 및 기본적인 교육을 토대로 한다는 것이다. 미국 내 교당과 기관이 30여 개로 대부분 기관과 교당에서 현지인과 한인들 교화를 병행하고 있다. 우리 대학원의 가치는 한인 1세대 중심의 교화체제에서 현지인 교화와 한인교화를 병행하는 병진체제로의 변화를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내 교도출석 현황을 조사했을 때, 현지인 법회출석 교도가 한인 교도를 넘어섰다. 대단한 지표의 변화다. 물론 신심, 공심, 공부심은 한인 교도들과 비교가 안되지만, 숫자적으로 넘어섰다는 것은 교화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말하기에 충분하다.

- 30여 명의 원불교학과 졸업생들이 배출 되었는데 원하는 인재가 배출됐다고 생각하는지. 미국 내 다른 불교계와 비교한다면.

미주불교에서 원불교의 위치는 아직 미약한 수준이다. 특히 주류교화에서 그렇다. 하지만 2010년에 본교에서 '불교 성직자의 교육과 역할'에 대한 학회를 열었을 때, 교단을 비롯한 미국불교, 티벳, 일본, 미얀마불교 대표들이 참석했다. 그때 주목할 만한 지적은 미국 포교를 위해 다른 나라에서 온 불교 성직자들이 현지 언어나 기타 필요한 준비를 하지 않고 와 개인적인 고통은 물론 소속 교단에 대한 불신과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교단의 경우, 2년간 충분하지는 않지만 언어와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준비해 가는 모습을 보고, 아주 부러워했다. 그래서 외국인 스님들조차 우리 대학에서 불교계를 대표해서 교육해 줬으면 좋겠다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다.
미주현대불교 편집장은 또한 미국 내 한국에서 온 다른 불교와 원불교를 비교하자면 현재의 미세한 차이가 향후 10~20년이 지나면 인재양성의 결과로 현격한 차이가 날 것이라는 예상을 하더라. 이를 통해 볼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본다.

- 개교 15년을 맞이해 특별하게 준비한 행사가 있다면.

2022년이 미국교화 50주년, 교단 제3대 제3회 말 결산, 미주선학대학원 개교 20년이 되는 해다. 얼마 전 미주동서부교구 전무출신 합동훈련을 하면서 '미국교화의 전망과 준비를 위해 7개 연구팀'을 구성했다. 그 중 내가 참여한 팀은 '미국에 맞는 법제, 교정시스템' 등을 중심과제로 삼고 있다. 미국 교화를 위해 7개 연구 과제를 같이 점검하고, 계획해 현지에 맞는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 가겠다.

- 개교 혹은 개교 이후에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학교를 시작하고 나서 10년 동안 초대 고문국 총장을 모시고 인증 평가, 법적, 행정적 부분 등 제반 토대를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2012년에 내가 총장에 취임해 직을 수행하면서 직접 실감을 하게 된 여러 어려움 중 가장 힘든 것은 미국 사회에서 느끼는 종교재단에 대한 기본적 불신이다. 이로 인해 원불교적인 기본 사상이나 가치 등을 공유, 정착시키고자 했을 때 현지인 교직원들의 공감과 후원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교립학교로서 원불교 사상이나 정신이 드러나지 않으면 학교의 정체성을 세울 수가 없다고 지속적으로 설득했으나 쉬운 길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2016년 원불교 교리에 바탕한 7대 핵심 가치을 "수양·통찰·탁월·반조·상생·협력·봉공"으로 정했고, 전체 동의를 받아 대학원의 실행덕목으로 공식 선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당 교무를 임명하고, 교직원들에게 원불교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안내하는 시간도 갖게 됐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대단한 인내와 지혜를 필요로 했다.

-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의 발전 방향을 전망한다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경쟁적 물질문명이 토대인 나라다. 이 토대 위에 세운 선학대학원이 미국 교육사회에 공헌할 본교의 가치와 유익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한국에서 원광대학교가 개교 후 지속적으로 가져왔던 고민과 노력을 미주선학대학원에서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사회, 서구사회에 원불교 가르침과 정신을 보편적 사상으로 정립해 감으로써 원불교가 미국에 정착해 가는 것이 세계화의 길이라 믿는다. 이와 같은 원대한 전망이 미주선학대학원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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