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절강성 항주는 하남성 중원 지대에서 멀지 않은 곳이며, 휴양·역사·불교·차문화의 도시로 유명하다. 요즘 중국 정부에서 전통문화를 복원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큰 관계로 항주의 차와 불교 복원문화가 성행을 이루고 있다.
'항주교화 개척을 위한 서원'을 두고 잠시 생각해 본다면, 중국에 오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다. 14년 전, 내가 항주에서 다도문화를 통해 일원문화를 전할 수 있었던 준비단계, 즉 포석이 된 두 가지 일이 있었다.
하나는 오래전부터 시작된 차와의 인연이며, 다른 하나는 출가식을 마치자마자 들어갔던 삼밭재 산상 7일 기도이다. 이 두 가지는 항주 개척을 가도록 내 인생사에 법신불 사은님이 미리 밑그림을 그려놓은 것이라 강하게 믿고 있다. 특히 차와의 만남은 내가 항주로 갈 수 있도록 그 긴 시간동안 마치 징검다리를 놓아 길을 안내해 준 사은님의 은혜이며, 운명과도 같았다. 사은님은 나와 차의 인연이 끊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도와왔다.
내 인생에서 다도와의 만남이 가장 강했던 때가 바로 종로교당 청년시절이다. 당시 정인신 교무님은 다도사상을 우주원리에 근거해 근원적인 사상부터 세세하게 가르쳐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인상으로 남게 됐다. 그 후로 출가하면서, 나와 차는 마치 동반자처럼 늘 함께했다. 새로운 환경이 바뀔 때마다 다행히 차와의 인맥이 끊이지 않고 지속됐다. 원불교대학원대학교 시절에는 차 문화를 전파시키는 책임까지 맡게 됐다. 그 후로 차는 교화의 방편이 되고, 수행의 매개체가 됐다. 마치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차는 이제 중국 항주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다도가 정말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나를 만남으로써 해결했다는 평까지 듣게 됐다.
그 시간만큼은 각자의 서원에 따라 기도 올리기로 했다. 기도문의 주제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했던 것 같지만 '첫 교화지에서 만날 교무님을 잘 만나게 해 달라는 염원'이었다. 하나 덧붙인다면 '지구 끝까지 아무리 어려운 데 가더라도 함께 따라 갈 것이니, 잘 지도받을 수 있는 분을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사무치게 했다. 그 기연으로 발령을 받은 곳이 분당교당이었고, 교화현장의 첫 인연은 김제명 교무님이었다. 교무님과의 불연으로 나는 중국에 가게 됐고, 지금의 항주에 발을 딛게 됐다.
지금 내가 교류하고 있는 모든 인연은 북경교당 근무 3년을 마치고 2007년 중국 항주에 와서 만난 인연이다. 당시 우연히 한 감상이 들었다. "내가 앞으로 중국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을 올해 다 만난 것 같다"는 뿌듯함이었다. 다음 편에서는 불연(佛緣),학연(學緣),차연(茶緣)을 통해 항주에서 10년 동안 일원회상의 기초를 다진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