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금희 교도/문화교당, 원불교국악협회장
원기56년(1971) 3월28일 돈암교당 원불교 청년교도를 중심으로 "국악을 통해 원불교와 호흡하고 교리를 깊이 연구하며 개인의 인격도야에 노력해 드높은 경지를 창조함에 있다"는 취지로 원불교 국악인협회가 발족했다. 우종양 회장, 신양호 부회장, 이오규 총무, 신용문 연주위원 등으로 구성됐다.

그해 6월 원악회 창립기념 및 제 1회 정기연주회와 10월에 반백년대회 기념 및 제2회 연주회를 끝내고 서울지구, 중앙총부 및 지방으로 순회공연을 시작하며 월1회 세미나를 주최해 7월에는 단소, 가야금 등의 강습회를 가졌다.

다음해 1월에는 원불교 청년들의 모임으로 남녀 13명의 회원이 민족음악으로써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한 콘텐츠 개발에 목적을 두고 활동을 시작했다. 그 시작에 중심에 뒀던 중요한 사업목적은 정기연주를 통한 교법을 국악으로 접목시키며, 대중들에게 원불교와 국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한 일원상의 진리를 바탕한 작곡활동과 국악기를 통한 명상음악 제작에 힘써 궁극에는 문화예술공연장을 마련해 상설공연 및 강습을 통해 원불교를 알리고 문화 속의 원불교를 알리는 기반을 구축하고자 했다.
국악협회의 시작과 근간이 됐던 것은 서울청년회 특별활동 국악강습회가 1970년 8월10일~20일까지 10일간 매일 2시간씩 원악회원들의 지도로 가야금 및 단소의 연주 강습을 하면서 부터다.

1회 원악 발표회는 서울 교육회관 대강당에서 국악과 국악기로 원불교 성가 연주, 승무 등으로 성황리에 이뤄진 공연들이었다. 원악회의 활동은 여러 여건상 계속 되어질 수는 없었지만 그 안에서 활동했던 교도들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간이 흘러 원기83년 (1998) 원악회가 근간이 되어 원불교 국악인회(원음국악관현악단·회장 우종양)로 재창립되면서 다시 왕성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원기84년에는 국악성가 CD 영산회상 봄소식, 영산춘풍 다시 불어, 법성에 굽이치는, 연잎에 비 내리니 등을 출간하는 큰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원불교 국악인협회가 교단과 사회에 기여하고자 한 사업들은 첫번째 교화대불공, 두번째 자신성업봉찬, 세번째 세계주세교단, 네번째 대자비교단, 다섯번째 보은대불사로 성업 5대지표의 정신을 계승해 우리의 근본인 전통음악으로 지역사회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우리 음악적 내용을 통해 원불교의 기본정신을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 근간의 터에 새롭게 무언가를 이루려하기보다는 해오던 일들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그 사업의 구체적인 세부안들을 설정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시기에 원불교 국악인협회를 지키려 노력하며 그 기틀이 되어준 나의 은사이자 협회의 회장으로 함께해 온 우종양 교수님의 노고와 업적은 지금 하고자 하는 많은 일들에 표본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 해내야 할 교도로서의 국악인의 길에 이정표가 되고 있다.

무언가를 세워 간다는 것은 누구 하나의 공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모두의 작은 힘이 합해 둔덕을 이루고 그 둔덕들이 작은 동산을 이루어 나가는 것처럼 모두가 한마음으로 애착·탐착을 버리고 힘써 일한다면, 큰 산을 이룰 수도 있고 그 산을 옮겨 놓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시기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원불교의 사상과 기본정신을 담고 있는 원불교 예술 창작의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보급을 위해 문화예술단체 육성과 문화예술 공연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아니다 100년이 지나가고 있으니 지금이 활성화시킬 가장 적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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