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맹자의 시대는 약육강식이 횡행하는 전국시대로서 부국강병으로 강자가 되는 것이 국가의 목표였다. 병가와 법가의 사상이 중용되고, 이를 지탱하기 위해 과도한 부역, 조세, 병역 등의 무거운 짐을 지게 하여 민중의 고통이 하늘을 찔렀다. 이에 맹자는 민중을 살리는 덕을 갖춘 군주가 국가를 이끌어 가도록 방향선회를 주문했다. 지금의 현실 또한 근본적으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자본주의에 의해 욕망과 이익이 극대화 되어 가는 오늘날, 윤리마저도 개인 중심이 되어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한한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덕의 윤리가 과연 통용되기는 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 갈수록 폐쇄화되는 문명의 한계를 풀어가는 핵심의 쟁점이기도 하다.

사은은 이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있다. 보은의 대요는 응용무념·무자력자 보호·자리이타·정의구현의 도이다. 이 도는 현대에 각광받는, 동양에서 강조해온 덕의 근본과도 통한다. 유교에서 말하는 인의예지의 4덕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맹자는 인간에게 내재된 사단(四端, 단초)을 통해 이 4덕의 근본을 심성에서 찾고 있다.

제(齊)나라의 선왕(宣王)이 행차 중에 고삐 잡힌 소가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어디로 가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소를 끄는 자가 이 소를 죽여 종에 피를 바르는 의식을 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당시 종을 새로 만들면 피를 바르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자 선왕은 그 소가 벌벌 떨며 죽을 곳에 나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내버려 두라고 했다. 맹자는 왕에게 "그러한 마음이면 넉넉히 왕 노릇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인간의 연민의 정이 바로 자비의 마음이다. 인간 본성에 내재된 선한 마음이다.

이 선량한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인의 단초이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인 수오(羞惡)지심이 의의 단초이며, 사양하고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辭讓)지심이 예의 단초이며,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마음인 시비(是非)지심이 지의 단초이다. 〈주역〉의 중천건괘(重千乾卦)에서는 천도의 원리인 원형이정(元亨利貞)에 기반하여 "군자는 인을 체득하여 족히 사람의 어른이 되고, 모임을 아름답게 하여 족히 예에 부합하며, 만물을 이롭게 하여 족히 의에 화합하고, 곧고 바름이 족히 일을 주관한다"고 하며, 하늘, 임금, 아버지 등을 상징화한 건괘가 바로 원형이정이라고 보았다.

유가의 핵심 덕목인 이 사단은 인이 자비의 덕, 의가 정의의 덕, 예가 상호공경의 덕, 지가 공명정대의 밝음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이를 보은의 대요와 비교해 볼 때, 또한 그 근본과 상통함을 알 수 있다. 물론 천지은의 천지8도만으로도 일원상의 진리와 원형이정의 도를 밝히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만물을 살리는 상생의 도의 입장에서는 사단이 곧 사은의 속성과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문명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다. 그렇기에 맹자도 이러한 사단을 구현하기 위해 욕심을 절제하는 과욕(寡慾), 산란한 마음을 거두는 구방심(救放心), 도에 의지하여 굳건한 마음을 지키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수양을 주장한다. 결국 동양 전통윤리를 계승한 사은이 삼학과 더불어 짝이 되어 실현될 때, 인간과 이 공동체를 이끌 현대윤리에 한줄기 희망을 던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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