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여의주를 삼키매
바람과 구름으로 조화를 부리고
한 번 날아 구만리 하늘에 노니
모든 생령들이 다 감탄하고 놀라더라.


대산 김대거(1914~1998) 종사
〈원불교문학100년 기념문선1〉


1962년 종법사위에 올라 33년간 재임한 대산종사가 1949년 폐결핵으로 김제 원평교당에 머물며 요양할 때 지은 한시다. 대산종사는 원평교당을 '나의 마음 고향이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한국전쟁 직전 원평으로 정양하러 올 당시 정산종사는 "방자연(放自然)의 생활로 계문에 구애 말고 정양하라'는 하명을 했기 때문이다. 익산 총부에서는 결제의 생활이었다면 원평에서는 해제의 생활을 맘껏 하신 것이다.

이혜화 문학박사는 "생사를 넘나드는 절체절명의 경황에서도 이를 초탈하여 한가한 마음을 잃지 않고 마침내 득도의 경지를 시화한 것이니 절로 선시가 되었다"고 평설에서 밝혔다. 또한 그는 "'용탄여의'는 여래의 자리에서 우주를 조감하는 듯 안목이 호대하다. 앞 두 구는 성불의 단계요, 뒤 두 구는 제중의 단계다"고 표현했다.

구도자가 성불을 하기 까지는 바람과 구름의 조화가 무궁무진하다. 시를 지을 당시 병마와 씨름하며 느낀 그 모든 경계는 조화였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감내할 수 없을 만큼의 경계를 감내하고 얻은 평화이기에 모든 생령이 다 감탄하고 놀라는 것 아니겠는가.

/둔산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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