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응주 교무/법무실
피경으로 기초 다지고 대경으로 시련을 극복해라
번잡한 일을 놓고 법을 구해 해탈을 얻으라

佛言- 人爲道에 去情欲을 當如草見火니 火來已却하듯 道人이 見愛欲하면 必當遠之니라
"부처님 말씀하시되 도를 닦는 이는 정욕 보기를 마른 섶 같이 볼지니 마른 섶은 불을 만나면 곧 위험해 질 것이요, 정욕이 많은 사람은 경계를 만나면 또한 위험해지므로 처음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먼저 그 욕심 경계를 멀리 할지니라."

〈사십이장경〉 30장의 말씀은 정욕이 많은 사람이 경계를 당하여 자제하지 못하면 큰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므로 초보자는 애욕의 경계에 맞닥뜨리기 보다는 일단 경계를 피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람마다 특정한 경계에 유독 흔들리는 경우가 있는데 일반인과 수도인을 물론하고 젊고 혈기 있는 사람이라면 이성에 관심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도를 이루고자 하는 특별한 서원을 세운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성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 〈사십이장경〉 29장의 말씀처럼 "연로한 여인은 어머니같이, 나이가 위인 여인은 누나같이, 나이가 아래인 여인은 여동생같이, 어린 아이는 자식처럼 생각하라"고 하신 것도 수도인이 여자를 대하는 바른 마음가짐을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면 이성에 대한 욕망은 마치 불과 같기 때문에 마음을 조절하지 않으면 접촉하는 모든 것들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의 육근은 마른 풀과 같아서 욕망을 멀리하지 못하면 결국 파멸의 길을 필할 수 없다.

거정욕(去情欲)이란, 정욕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으로 정욕이란 마음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욕구(欲求) 혹은 물건을 탐내고 집착하는 마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특히 이곳에서는 이성에 대한 욕망을 의미한다.

당여초견화(當如草見火)란, 마땅히 마른 풀을 가진 사람이 불을 본 것과 같다는 의미로 마른 풀이 불을 만나면 재만 남게 되므로 불을 두려워 한다는 말씀이다. 이처럼 풀이 불을 만나면 다 타고 아무것도 남지 않듯이 수도인이 이성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면 불길에 둘러싸인 풀처럼 어떤 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타 버리고 말 것이다.

화래이각(火來已却)란, 불길이 오면 뒤로 물러나야 한다. 욕망이 불처럼 일어날 때 멈추지 못하면 자신이 파멸하는 것을 알기에 피해야 한다. 그러나 중생은 정욕에 눈이 멀게 되면 죽는 줄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면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견애욕 필당원지(見愛欲 必當遠之)는 애욕을 보았으면 반드시 이를 멀리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마른 풀이 불을 보고서 물러나듯이 수도인은 애욕의 경계를 당하면 시험하려 덤비기 보다는 반드시 피경(避境)을 통해 힘을 길러야지 힘이 없는 수행자가 경계에 대항하는 것은 맨손으로 호랑이를 상대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수도를 하는 사람이 정욕(情欲, 이성에 대한 욕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비유로써 마른 풀과 불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마치 불나방이 어두운 밤에 일렁이는 모닥불을 보고 그것이 본능적으로 끌리기 때문에 거기에 들어가면 죽는지 사는지에 대한 생각할 틈도 없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자신을 태우는 것과 같이 수도인도 애욕의 경계를 가까이 하면 화를 입을 수 밖에 없으니 반드시 피경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대산종사는 불조들의 말씀 중에서 핵심만 가려 모아놓은 '무심결(無心訣)'에 육조단경의 염약착경즉번뇌(念若着境卽煩惱, 생각이 만일 경계에 집착하면 바로 번뇌가 된다)를 해설하면서 "한 생각만 어떠한 경계에 집착되면 바로 번뇌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의 첫 단계에 있어서는 피경으로 기초를 다지고 다음에는 대경(對境)으로 시련을 극복하고 조화를 이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즉, 피경공부를 통해 공부의 기초를 다지고, 힘이 길러진 다음에 대경공부를 통해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정산종사도 "제 힘에 겨운 난처한 삿된 경계에 끝까지 대결하여 싸우는 것이 선책이오리까"라는 제자의 질문에 "무지 포악한 사람이 와서 시비를 걸 때에는 슬그머니 그 경계를 피하였다가 뒤에 타이르듯이 하라. 공부 도상에 고비가 없지 않나니, 그 고비를 억지로 뚫으려고만 하지 말고 수월스럽게 돌아갈 길을 찾는 것이 선책이니라"(〈정산종사법어〉 응기편 24장)고 말했다.

초기 교단의 수양서였던 수심정경(修心正經)의 강령을 밝히며 외수양(外修養)과 내수양(內修養)의 공부에 대해서도 "외수양은 밖으로 경계를 대치하는 공부인 바, 첫째는 피경 공부니, 처음 공부할 때는 밖에서 유혹하는 경계를 멀리 피하는 것이요, 둘째는 사사(捨事)공부니, 긴하지 않은 일과 너무 번잡한 일은 놓아버리는 것이요, 세째는 의법(依法)공부니, 해탈의 법을 믿어 받들고 진리로 안심을 구하는 것이요, 네째는 다문(多聞)공부니, 위인들의 관대한 실화를 많이 들어 항상 국량을 크게 하는 것이라, 이러하면 자연히 바깥 경계가 평정되어 마음이 편안하리라"고 말했다.(〈정산종사법어〉 경의편 6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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