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진 바람이 어느 덧 여름이 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8월의 끝자락, 달력을 보니 어느 덧 올해도 반절로 줄고 있었다. 유난히 더웠던 긴 여름을 보내고 나니, 생각지 못하게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항상 지나고 나면 "뭐 한 것도 없이 시간이 갔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 무심코 교당 앞에 여름 내 공사 중이던 건물을 보았다. 그런데 어느 새 커피숍이 오픈하여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언제 커피숍이 들어왔지? 거 참 빠르네." 세상은 늘 바쁘게 움직이고 천지도 춘하추동으로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매일매일 쳇바퀴처럼 살아가고 있었음을 느끼니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천지에 사시 순환하는 이치를 따라 만물에 생·로·병·사의 변화가 있고 우주에 음양 상승(陰陽相勝)하는 도를 따라 인간에 선악 인과의 보응이 있게 되나니, 겨울은 음(陰)이 성할 때이나 음 가운데 양(陽)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양이 차차 힘을 얻어 마침내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며, 여름은 양이 성할 때이나 양 가운데 음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음이 차차 힘을 얻어 마침내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는 것과 같이, 인간의 일도 또한 강과 약이 서로 관계하고 선과 악의 짓는 바에 따라 진급 강급과 상생 상극의 과보가 있게 되나니, 이것이 곧 인과 보응의 원리니라."(〈대종경〉 인과품 2장)

여름 그 안에 음이 자라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고 마냥 덥다고만 툴툴대고 있었다. 그러다 추운 겨울이 오면 또 추위와의 사투를 벌인다. 준비 없이 말이다. 춘하추동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돌아오는 계절에 대비를 할 줄 안다. 인과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선업을 짓는지 악업을 짓는지 알지 못하고 생각 없이 살아간다면 나에게 돌아온 과업에 불평, 불만만 늘어놓을 것이다. 감사생활이 되지 않는 이유는 인과보응의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탓을 하고 원망을 할 수가 없다. 한 점 시원함도 안 느껴지던 바람에서 찬 기운을 느꼈을 때 허무한 가운데 무언가 기쁨이 공존함을 느꼈다.

참 신기했다. 왜 기쁘지? 아마도 천지가 순환함을 알아차림의 환희가 아니었을까 한다. 이처럼 사람의 일도 선업에는 선과가 악업에는 악과가 따라옴을 알아차린다면 인과에 대한 준비를 하고 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이를 아는 사람은 악업을 지을 수가 없게 되고, 설사 지었다 할지라도 바로 참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고, 선업을 짓는데 공을 들이게 된다.

아침, 저녁 찬 기운에 이불을 바꾸고, 창문을 닫는다. 계절이 바뀜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도 찰나로 빠르게 바뀌어 간다. 그러나 준비 없이 마음에 끌려만 간다면 한 겨울임에도 여름옷을 입고 덜덜 떨고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인과보응의 원리를 아는 우리는 늘 과에 대한 준비를 하고 인을 심을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인을 많이 심어서 선과를 많이 쌓는다면 나의 인과의 나무에 늘 풍성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광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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