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준영 교무/양정교당

얼마 전 어린이 법회 후, 몇 명의 어린이들이 말했다. "교무님! 저희 어른 될 때까지 여기 계세요! 어디 가지 마세요!" "그럼 교무님 할머니 될 때까지 있을까?" "네! 교무님 할머니 돼서 돈 없으면 저희가 드릴게요! 저희가 맛있는 것도 사드릴게요!" 이 대화는, 법회 후 근처 카페에서 어린이들에게 맛있는 음료를 사준 후에 이뤄진 내용이다.

어린이법회, 학생법회, 원 아카데미 학원 인성교육 등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즐겁다. 물론 처음에는 부담스럽고 긴장감이 가득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이 쌓여가고 편안함과 친밀감으로 변했다. 이렇듯 즐겁게 아이들과 법회를 보고 있지만, 사실 숫자가 많은 편은 아니다. 때문에 고민할 때도, 스스로 깎아내릴 때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애초에 내가 목적했던 것은 양보다 '질'의 교화였고, 또한 현재의 내 그릇과 실력으로는 수십 명 되는 아이들을 한 번에 이끌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내가 만나는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정을 쌓고, 그 아이들이 우리의 교법적인 사고, 원불교적인 세계관으로 변해가기를 바랐다. 그로 인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조금 더 수월하고, 여유있고, 행복하며, 더불어 복을 짓는 삶이기를 바랐다.

나는 원불교 집안이라 자연스럽게 진리, 인과, 윤회 등 이러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 살았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믿고 살아왔다. 그렇기에 어떠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세계관이 전혀 없다는 것에 놀라웠고, 어떻게 이러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처음 교화현장에 발령받았을 때에도 그랬다. 교당에 다니는 어린이들, 학생들 역시 진리에 대해 잘 몰랐고, 다닌 지 오래 되지 않은 일반 교도님 또한 여기에 의심을 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꽤 놀랐다. 나 또한 깨달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부처님 말씀이고 대종사님 말씀이며, 아무리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생각해봐도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그럴 듯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가 법회 시간마다 자주 이야기했던 것이 바로 '인과' 이야기였다.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물들어가기를 바라며 다양한 이야기를 했고,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해도 결국 '인과'로 결론 맺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나니 아이들이 조금씩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법회 시간에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대답도 곧잘하게 됐고, 자신이 겪었던 일들도 꺼내며 속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진리, 인과, 천도재 등의 이야기를 하면 귀를 쫑긋 세우며 집중해서 들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속으로 영주와 청정주를 외우고, 짧게 묵상심고를 모신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쉽게 전달할까.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고민한 덕분에 나에게도 좋은 영향이 있었다. 너무나도 요란하고 분하고 억울해서 '더 크게 되갚아주리라!'는 원망심을 가졌을 때, 내 머릿속을 강하게 스쳤던 법문은 '네가 갚을 차례에 참아버려라'였다.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늘 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교무인 내가 공부심 없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지' 하고 마음을 돌린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학생들은 알기 쉽게 설명해주면 이해가 빠르고, 어린이들은 상(相)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빠르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이미 오랜 세월 굳혀진 사고를 바꾸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렇기에 지금 이 아이들의 시간이 참 소중하고 귀하다. 요새 애들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아이들은 순수하고 물들지 않았으며 마음을 잘 열어준다. 이 소중한 아이들이 이 교단을, 이 교법을 만난 덕분에 진급하는 삶, 복과 혜가 충만한 삶이 되고,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이 교당의, 교단의 주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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