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세진 교도/마포교당, 한양대 교수
한국은 세계에서 성차별이 강한 나라 중 하나
차별심 버려야 남녀권리동일 실현할 수 있어

"안 생겨요." 몇달 전에 한 대학교 캠퍼스에 학생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에 적힌 문구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애인이 안 생겨요"라는 말이었다. 연애를 하고 싶은데 애인이 생기지 않는단다. 그 학교는 공대가 커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학교이니 그 문구는 남학생의 고민을 나타내는 듯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15년의 인구통계에 따르면 20대의 남성 인구는 약 340만 명인데 여성 인구는 약 302만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20대 남성 10명 중 1명가량은 같은 연령대에서 짝을 찾을 수 없다. 연애를 못하는 젊은 남자들이 많을 수밖에.

왜 이렇게 됐을까? 20∼30년 전에 남아가 여아보다 너무 많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는 보통 여아 100명에 남아가 110명꼴로 태어났다. 부모가 출생아의 성을 일부러 선택하지 않으면 여아 100명에 남아 105명 정도가 태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 비율은 이른바 '남아선호'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남아선호. 요즘은 참 듣기 힘든 말이다. 오히려 지금 부모는 여아를 선호한다고 한다. 2014년의 한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아를 선호하는 부모의 비율이 남아를 선호하는 비율의 두 배 가까이 됐다. 2000년 이후에는 여아 100명당 남아가 거의 정확하게 105명이 태어나고 있다. 성별을 골라서 아이를 낳는 일은 이제 없어졌다.

불과 20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남아선호는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럼 우리 사회는 이제 남녀가 평등한 사회가 되었을까? 영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OECD 국가를 대상으로 일터에서의 성별격차 정도를 나타내는 '유리천장지수(glass ceiling index)'라는 것을 발표한다(유리천장은 보이지 않는 차별 때문에 여성이 일터에서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그에 따르면 OECD국가 중 유리천장이 가장 단단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우리나라 여성은 이웃인 일본,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여성보다도 더 단단한 유리천장에 눌려있다고 한다. 성별 임금격차는 최대, 정부와 기업에서 관리자 또는 경영자인 여성의 비율은 최하위이다. 다른 지수를 봐도 우리나라의 성별격차 수준은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심한 편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교법을 짤 때 사요의 한 조목으로 남녀권리동일(현재의 자력양성)을 왜 정하였을까? 우리나라에서 성차별의 문제가 오랜 기간 지속될 것임을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초기 교서인 <육대요령>의 남녀권리동일 조목에는 결혼 후 물질적 생활을 각자 자립적으로 할 것, 여자가 남자보다 낫다면 그 지도를 받을 것, 모든 일에 남녀를 차별하지 말고 일에 따라 대우할 것,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것, 남녀가 다 같이 직업에 근실하여 생활에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했다. 이 조목들을 보면 교육 받을 권리, 일하고 물질적인 자립을 누릴 권리, 능력에 따라 지도자의 위치에 오를 권리에서 남녀를 차별하지 말 것을 역설하고 있는데 바로 거기서 남녀 간에 아직도 동등하지 않은 것이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이다.

제도가 미비해서 성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2014년부터 시행된 남녀고용평등법은 채용, 임금, 복리후생, 승진, 퇴직, 해고 등에서 남녀차별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여전히 차별 받는 것은 우리가, 특히 남성이 알게 모르게 여성을 차별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맞벌이하던 부부가 아이를 돌보기 위해 누군가 일을 그만두거나 줄여야 한다고 하자. 아내가 그렇게 하면 당연한 것이라고 하고 남편이 그렇게 하면 그 사람 직업이나 능력에 뭔가 문제가 있지는 않은가하고 의심하지는 않는가? 여성은 일보다 가정을 우선시해야 하고 남성은 가정보다 일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을 보면서 '앞으로는 여자 대통령을 뽑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지는 않았는가.

차별하는 마음이 있으면 차별을 보아도 그냥 넘겨버리거나 그것이 차별인지도 알지 못하므로 차별을 없앨 수 없다. 이미 백 년 전에 남녀권리동일을 외쳤던 대종사의 제자로서 남녀를 차별하는 마음을 벗어 던지지못한다면 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