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응주 교무/법무실
재색명리 성취하고 그것에 착돼 근심 갖는다
자신의 분수에 편안한 삶이 성자의 삶이다

佛言- 人從愛欲生憂하고 從憂生畏니 無愛卽無憂하고 不憂卽無畏니라
"부처님 말씀하시되 사람은 애욕으로부터 근심이 생기고 근심으로 좇아 무서움이 생기나니 애욕이 없으면 곧 근심이 없고 근심이 없으면 곧 무서움이 없으리라."


〈사십이장경〉 32장은 우리가 느끼고 있는 근심과 걱정, 두려움은 모두 애욕에서 생기기 때문에 이 애욕만 없애고 보면 모든 근심과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말씀이다. 애욕이란 이성에 대한 색욕으로 대표되지만 어떤 물건에 대한 애착과 욕심등도 포함이 된다. 즉, 재색명리를 모두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물건을 수중에 넣게 되면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도둑이 들까, 잃어버릴까 늘 노심초사하여 근심에서 벗어날 날이 없고 근심이 더 깊어지면 두려움까지 생기게 된다.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애착이 생기면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늘 전전긍긍하면서 나의 온전한 정신을 조각내어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도를 한다는 것은 일체의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근심과 두려움, 무서움을 없애고자 한다면 애욕 없애는 공부를 반드시 해야 할 것이다.

인종애욕생우(人從愛欲生憂)란, 사람은 애욕을 쫓음으로서 근심이 생긴다는 말씀이다. 인생은 무엇인가를 소유하기 위해서 기차처럼 앞만 보고 달린다. 많은 사람들은 선망의 대상인 재색명리를 추구한다. 막상 그 추구하던 것들을 얻게 되면 수고한 만큼 애정이 깊어지고 그 애정이 깊이를 더해 애착으로까지 진행된다. 그러면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늘 근심이 떠나지 않게 된다. 근심이란 어떤 일이 해결되지 않고 늘 마음을 태우거나 우울해 하는 상태를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이룩해 놓은 재산과 명예가 있어 행복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지키고 잃지 않기 위해 이룩해 놓은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지켜야 하니 얼마나 근심이 많겠는가?

종우생외(從憂生畏)란, 근심에서 두려움이 생긴다는 말씀이다. 두려움이란 어떤 대상을 무서워하여 마음이 불안하다는 뜻이다. 근심에서 상태가 더 진행되면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잃었을 때의 상태를 생각하면 마음에 무서움과 불안이 엄습하기 때문에 더욱더 애착하게 된다. 즉, 근심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로 인해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게 된다. 이는 가진 것이 없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중의 하나이지만 행복지수는 가장 높은 나라라고 한다. 가난하다는 것은 경제적인 것을 의미하고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은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현실은 아무리 고달파도 마음에 욕심이 없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리라.

무애즉무우(無愛卽無憂)란, 애욕이 없은즉 근심도 없다. 애욕이 없다는 것은 재색명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없다는 의미이다. 무엇인가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심이 없으면 자연히 근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악착같이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없으면 근심과 걱정이 없는 편안한 삶을 살게 된다.

불우즉무외(不憂卽無畏)란, 근심이 없은즉 두려움이 없다. 원인없는 결과가 없듯이 근심이 없으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 거지는 발을 쭉 뻗고 자고, 부자는 웅크리고 잔다는 속담이 있듯이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걱정할 것이 없다. 무소유하고 무집착하면 어떤 것에도 걸리고 막힘없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

중생은 재색명리에 대한 욕심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성취하면 모든 행복이 자기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근심과 두려움인 것이다. 행복하려고 성취했지만 마음은 더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다. 결국 불안하고 초조함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 마음공부인 것이다.

이 근심과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부처님의 초전법문인 고집멸도의 사성제속에 해답이 있다. 인생 그 자체는 모두 고통이라고 보는 '고', 그 고통의 원인은 마음속의 번뇌와 갈등이 쌓여 생긴 것이라는 '집', 번뇌와 갈등을 없애야 한다는 '멸', 열반과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는 '도'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은 왜 늘 고통스러울까? 그 고통의 원인을 알고 보니 번뇌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고통의 원인인 번뇌를 없애고 해탈과 열반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인 바른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고집멸도 법문이다. 공자도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개 삼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이 가운데 있다. 의롭지 못하게 부와 귀를 얻는 것은 나에게 뜬구름과 같도다"고 말했다. (〈논어〉 술이편)

삶의 즐거움을 밖에서 찾아 소유하고 지키고 물려주는데 평생을 허비하는 범부 중생의 삶이 있고, 세상의 재색명리를 내것으로 삼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분수에 편안한 생활을 하는 성자의 삶이 있다. 나는 어떤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