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응용무념의 도는 천지8도의 대표다. 이 도를 체받아서 동정 간 무념의 도를 양성하고, 정신·육신·물질로 은혜를 베푼 후에 관념과 상을 없게 할 것이며, 배은에 대해서도 미워하고 원수를 맺지 말라고 한다. 대산종사는 천지은은 만물에게 응용무념으로 덕을 입혀주신 대시주은이라고 하며 무념보시를 강조한다. 그리고 부처님의 원만한 10대 인격의 하나로 보고 있다.

전통적으로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는 말이 있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 주는 물건이 청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물이 아니더라도 조언, 위로, 격려, 칭찬 등의 말,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 모두를 통틀어 청정해야 한다. 이 삼물 가운데 하나라도 결함이 있다면, 또 다른 인을 만들고, 그 인은 여러 고통을 낳는다. 부정한 혹은 부당한 거래가 이 사회를 얼마나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천지는 밝고 텅 빈 가운데 무량한 덕을 베푼다. 햇볕이 자연을 기르고 있지만,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공기가 우리를 숨 쉬게 하지만, 그 값을 치루라고 하지 않는다. 물이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하고,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주지만 그 수고를 말하지 않는다. 우리 존재는 이처럼 응용무념한 대시주의 은혜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무한한 은혜를 입고 있음에도 우리 자신의 것에 대해서는 한없이 집착한다. 영역을 그어놓고 소유를 주장한다. 햇볕, 땅, 물, 공기, 자연의 모든 생명체들은 인간의 소유물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자라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소유라는 말은 하나의 허망한 관념에 불과하다. 우주의 긴 역사에 견주어 보면, 인간은 찰나를 살다가 돌아간다. 그럼에도 그 순간 쉼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금강경〉에서 "모든 함이 있는 법은 꿈과 같고 환(幻)과 같으며 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고 한 것은 무상(無常)의 진실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는 집착하지 않는 보시를 말한다. 천지가 모든 것을 베풀고 상을 지으며 집착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대승불교의 6바라밀 가운데 첫 번째가 보시바라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라밀은 피안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을 말한다. 이 보시바라밀에는 재산으로 하는 재보시, 공포의 마음을 없애주는 무외보시, 부처님의 가르침을 베푸는 법보시가 있다.

〈금강경〉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주한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것이다. "형상 있는 바가 다 이 허망한 것이니 만일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고 하는 것은 모든 존재는 곧 무자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본에는 반야공이 있다. 여기에 입각해 〈육조단경〉에서 혜능이 "무념(無念)으로 종지를, 무상(無相)으로 본체를, 무주(無住)를 근본으로 삼는다"고 한 것이다. 부처의 반야 지혜는 사상을 대표로 하는 모든 상을 넘어설 때 솟는다.

무념은 경계에 물들지 않으며, 일체에 집착하지 않고 자재한 것을 말한다. 진여의 불성은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는 불염,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불변, 어떤 힘에도 파괴되지 않는 불괴의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천지8도를 갈무리한 응용무념의 도는 결국 불성을 통해 불보살의 삶을 완성으로 이끄는 지름길임을 알 수 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