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순/동주중학교

몇 년 전 일이다. 학교를 옮기고 첫해에 3학년 담임을 맡았다. 그 때 만난 태호의 어머니와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 처음 만났을 때 태호 어머니는 자율형사립고 컨설팅을 위해 학원에 가야하는데 담임인 내가 학교생활기록부를 빨리 안 준다고 원망을 했다. 전화로 통화했을 때는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느껴졌다. 직접 학교에 찾아와서 대화를 나눠보니 어머니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읽혀져서 처음의 원망하던 마음이 사라졌다.

어머니와 태호의 노력과 신경전에도 불구하고 태호는 지원한 학교(자사고)에서 떨어졌다. 태호와 어머니는 속상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태호는 점수에 신경을 너무 써서 중간·기말시험 때에 배가 아팠고, 자사고 2차 시험 준비를 하는 기간에는 맡은 청소 등을 좋은 말로 지도해도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고, 옆 친구의 사소한 말에도 화를 내면서 그 친구 뺨을 때렸다. 태호가 얼마나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느끼는지 보였기에, 우수한 아이들이 모이는 자사고에 가서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이 들어 차라리 태호를 위해서 자사고 떨어진 게 잘됐다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머니가 인문계 원서 쓸 때 집에서 먼, 전교 1·2등하는 아이들이 주로 간다는 학교장 전형고에 원서 쓰기를 원했다. 태호는 중학교 친구들이 너무 좋고, 놀아본 적이 없어서 놀고 싶다고, 맘 편하게 공부하고 싶다고 집과 가까운 일반고에 지원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태호는 경쟁 치열한 고등학교에 가는 것을 싫어하고 일반고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본인 실력 발휘에 훨씬 유리할 것이라는 등 어머니와 두 차례 오랫동안 통화를 했지만 설득에 실패했다.

태호는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좋다고 소문난 그 학교장 전형고에 진학을 했지만 학교 아이들과 싸우고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 간 적도 있고, 다른 학교장전형고로 전학 갔다가 하루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어머니를 원망해서 어머니가 견딜 수 없어서 내게 전화를 했다. "졸업한 아이지만 선생님 외에는 의논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태호 어머니 전화를 받았을 때는, 둘째의 사춘기 때문에 힘든 시기라 나도 모르게 첫마디 말이 "어머니, 태호 키우기 너무 힘드시죠? 괜찮으니 언제든지 의논해 주세요"였다.

그 때 이후로 어머니는 카톡으로 태호와의 상담을 부탁하거나 불안하고 힘들 때마다 의논을 해왔다. 나도 둘째가 잘못될까 봐 불안하던 시기인데 어머니의 불안이 읽어져서 스스로는 실천하지 못하면서 "태호를 믿어주면 공부 욕심 있어서 잘할 아이이니 본인이 결정하도록 기다려 주세요. 어머니가 불안해 하면 아이도 따라서 불안해져요. 우리가 부모라서 기대를 자꾸 하게 되죠?" 등 카톡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두고 상담을 거듭한 끝에 그 해에 태호는 그렇게 다니기 싫어하던 학교장 전형고를 자퇴하는 결단을 내리고 이듬해부터 집 가까운 일반고에 1학년으로 진학했다. 새로운 학교에 들어간 태호는 놀 때는 놀고 공부할 땐 열심히 해서 적응을 잘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이가 너무 아프고 힘들 때는 욕심내지 않겠다고 아이가 행복하면 된다고 했는데 때때로 자신의 기대가 또 과해진다고 반성하면서 "태호가 반장이 됐어요. 모의고사 전교 1등 했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등 좋은 소식을 알려준다. 태호도 가끔 방문해 잘 지내고 안정된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다. 어머니도, 나도 때때로 불안에 흔들리지만 불안이 자신의 것인 줄 알게 돼서 너무 다행이다. 어머니는 내게 감사하다 하지만 나 또한 어머니를 통해 둘째에 대한 나의 불안과 기대를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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