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인증제, 민간 이양으로 총체적 부실 초래…대책 마련 시급
일반축산물과 큰 차이 없는 무항생제, 소비자 오해 불러
인증제 전면 개편으로 '먹을 거리에 대한 신뢰' 회복해야

'국민 음식' 달걀이 '국민 우환'이 됐다.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주요 대형마트 달걀 판매량이 반 토막이 났다. 살충제 전수검사 후 판매가 재개됐지만 소비자 불신이 커진 탓이다. 정부의 구멍 뚫린 친환경 인증 제도로 친환경 농축산물에 대한 신뢰성 확보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친환경 달걀은 항생제를 쓰지 않은 무항생제 달걀과 화학비료까지 쓰지 않은 유기농 달걀 두 가지로 나뉜다. 두 종류 모두 살충제 사용은 금지돼 있다. 살충제 사용 여부를 가리기 위해 1년에 두 번 잔류물질검사를 받는다. 검사 결과 금지된 성분이나 기준치를 넘는 양이 나오면 인증은 취소된다.

▲ 살충제 달걀 파문으로 대형마트 달걀 판매량이 반 토막이 났다. 한 소비자가 살충제검사결과 안내문을 읽어보며 친환경달걀 구입을 고민하고 있다.
일반축산물과 차이 없는 '무항생제 인증'

농림축산식품부 전수조사 결과 전체 농장 중 52곳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중 31곳(60%가량)이 친환경인증 농장이다. 친환경농장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정부로부터 연간2000만~3000만원을 최장 3~5년간 지원받는다. 일부 친환경농장들이 국민의 세금 지원과 소비자 신뢰를 배신하는 '도덕적 해이'를 저지른 것이다.

검증을 거친 농장에만 친환경인증마크가 달리는 줄 알았던 국민은 배신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친환경 인증 달걀은 전체 생산의 56%를 차지한다. 이중 무항생제 인증이 99%로 소비자들이 '친환경'의 의미로 떠올리는 유기농은 1%에 불과하지만 무항생제도 친환경 인증에 속한다. 친환경 인증제는 농산물 부문은 유기농과 무농약으로, 축산물 부문은 무항생제와 유기축산물 인증으로 나뉜다.

무항생제 인증은 소비자들로부터 항생제뿐만 아니라 동물용의약품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축산물로 오해되곤 한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지난 2014년 10월 실태를 점검한 뒤 "무항생제 축산물은 관련 법규상 동물용의약품을 사용하는 데 사실상 제약이 없는데다 실제 일반 축산물과 유사한 정도로 동물용의약품을 사용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일반적으로 항생제를 쓰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항생제' 명칭을 사용하면 소비자의 오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밝히고 농림축산식품부에 시정 조치를 권고한 바 있다.

특히 무항생제 인증 제품의 포장에는 '항생제가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친환경' 등의 문구나 연관 이미지가 포함돼 꼼꼼하지 않은 소비자들이 유기농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동물복지를 추구하는 인증과 그렇지 않은 축산물 인증이 분명히 구별되어 소비자 혼동이 없어야 할 것이다"며 친환경 무항생제 인증 제도의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민간이 관리하는 친환경인증의 부실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9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국립농산물관리원이 업무를 전담했으나 2002년부터 민간업체가 참여하기 시작해 올해 6월부터는 민간업체가 모든 인증 업무를 넘겨받았다. 농관원은 인증 업무가 제대로 처리됐는지에 대한 사후관리만 한다.

민간업체들은 인증을 신청한 농가에 대해 서류 및 현장심사를 통해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고 친환경 인증서를 내준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는 정부로부터 친환경 농산물 직불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상품에 친환경 마크가 붙으면 그렇지 않은 상품보다 가격을 2배 가까이 비싸게 판매할 수 있는 것도 업체 입장에서는 장점이다.

현재 국내 농축산물에 대한 친환경 인증제도는 전국 64개 민간인증기관이 농가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고 인증서를 발급하는 체계다. 수수료와 출장비, 검사비 등 건당 인증에 드는 비용은 평균 80만원에 이른다. 지난 한 해 동안 인증받은 농가와 제품 수는 7만8318개로, 인증에 드는 총 비용을 단순 계산하면 626억5440만원에 육박한다. 민간인증기관 하나당 해마다 1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친환경 인증기관이 앞다퉈 인증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리는 이유다.

▲ 친환경인증 종류. 농산물은 무농약·유기농, 축산물은 무항생제·유기농으로 나뉜다.

친환경인증기관을 장악한 '농피아' 폐해

인증기관을 '농피아'가 장악한 것도 이번 사태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농피아는 농축산분야 근무 경력을 가진 공무원과 이탈리아 범죄조직을 일컫는 마피아에서 따온 조어다.

친환경농산물 인증기관으로 지정된 민간업체 64곳 중 5곳이 농산물품질관리원 퇴직자가 대표를 맡고 있으며, 나머지에서도 다수의 퇴직자가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인증심사원 649명 중 85명이 농관원 출신으로 밝혀졌다. 이번 정부의 전수조사에서 기준에 미달한 농장 37곳 가운데 25곳(68%)이 농피아가 있는 인증기관에서 친환경인증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인증농장에 대한 관리 미흡도 달걀 사태의 원인 중 하나다. 인증기관의 한 관계자는 "농가가 농약을 쓰는지 직접 보려면 1년 내내 농가와 같이 살아야 한다"며 "농가를 믿고 영농일지를 들춰보는 게 전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감사원과 농식품부가 지난 2013년부터 올해 2월까지 농관원을 대상으로 한 감사 결과를 보면, 2014년에 적발한 부실 인증 건수는 6천411건, 지난해에도 2천734건이나 됐다.

감사원은 "농관원이 온라인 '인증관리정보시스템'을 통해서만 인증기관의 인증 업무를 감독하는 탓에 관리·감독에 구멍이 뚫렸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친환경 인증 업무를 민간에 이양한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기관이 다시 업무를 넘겨받아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친환경 문구가 크게 들어있는 무항생제 계란.
친환경 인증제도 개편해야

농식품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농축산분야 퇴직 공무원의 인증기관 취업을 제한하는 방안을 비롯해 친환경 인증제도를 엄격히 관리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친환경인증제의 전면 개편을 주문하고 있다. 조윤미 C&I소비자연구소 대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친환경인증'을 없애고 '유기농'과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해썹·HACCP)'으로 재편·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기농과 무항생제 인증은 개념이 전혀 다르고 농가의 실천 항목도 차이가 큰데 '친환경인증'으로 묶어 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적발된 달걀 농장을 향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그들의 책임도 무겁게 물어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과 대책은 결국 정부와 정치권에 있으며, 그동안 방관한 책임이 더 크다. 정부는 일반 국민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신뢰'는 한번 추락하면 좀처럼 회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철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국민들이 더 걱정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식품 안전 관리 전반의 후진성과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정부의 능력이라는 것도 인지해야 한다. 이에 농장에서부터 식탁까지 안전관리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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