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가〉 149장 오 법신불 사은이시여는 반주를 들으면 들을수록 포근한 감이 들고, 따스한 격려가 깔려있다.
열반인이 '참 열반' 이루도록 축원의 기운을 보내는 노래
쳐지지 않으면서도 엄숙하고 굳건한 의지 살아나게 불러야


149장) 오 법신불 사은이시여
조정근 작사 / 김규환 작곡

1. 오 법신불 사은이시여
오 법신불 사은이시여
참 열반에 들도록 위력을 내리소서
착심을 여의도록 큰 힘을 주소서
천업이라 하여도 돌파하게 하옵소서

2. 오 열반의 주인공이시여
오 열반의 주인공이시여
부처님 인도하심 오롯이 받으소서
번뇌를 끊으시고 업장을 녹이소서
청정한 서원 일념 끝까지 챙기소서

참 열반에 들도록 위력을 내리소서
〈성가〉 149장 오 법신불 사은이시여는 '참 열반에 들도록'이란 부제가 달린 곡으로, 효산 조정근 교무가 지은 천도 노랫말이다. 조정근 교무는 광주교구장 겸 광주교당 교감으로 제직할 때 자주 교도들의 초상을 접하게 된다. 효산은 깊은 법정을 맺었던 교도들이 열반을 맞게 되니, 부디 천도의 길을 잘 건너가길 간절히 당부하며, 소태산 대종사께서 밝혀준 '열반전후에 후생 길 인도하는 법설'과 〈대종경〉 천도품의 말씀을 요약해서 간곡히 일러주게 된다. 이때 당부했던 천도의 핵심이 바로 〈성가〉 149장의 오 법신불 사은이시여이었던 것이다.

조정근 교무는 한 때 팔타원 황정신행의 요청에 따라 휘경여자중학교의 교장으로 발령받게 되는데, 당시 이 학교는 팔타원이 설립 이사장으로 있을 때였다. 당시 종법사이신 대산종사는 조정근 교무에게 효도할 효(孝), 효산이란 법호를 주면서 팔타원 황정신행 선진께 큰 효를 다할 것을 당부한다. 대산종사는 팔타원께서 대종사님에게 올린 신성을 이야기하시며 "팔타원님께 효하는 것이 결국 대종사님께 효하는 것이니, 팔타원님의 아들 역할을 잘 하라"고 거듭 당부했다.

휘경학교 재직 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팔타원께서 조정근 교무와 같이 차를 타면 사탕을 건네주며 누가 더 사탕을 많이 남기는지 시합을 하자고 제안하셨다 한다. 이 사탕을 물고 서로 침묵을 지키며 선심(禪心)으로 있자는 것이다. 이런저런 시비에 휩쓸리지 말고 마음의 중심을 잡고 살자는 요청이었던 것이다. 이에 효산은 그 뜻에 따라 학교의 일에 있어 일체의 다른 소리를 하지도 듣지도 전하지도 않는 신의와 대의를 지켜갔다. 이사장과 교장이 선심으로 있으니 모든 직원들이 다 청정한 마음으로 안정되었다.

이런 심경이 바로 청정일념의 천도 심경이었을 것이다. 모든 애착과 탐착을 다 놓아버리는 청정일념의 성품을 챙겼던 것이다. 이처럼 〈성가〉 149장은 효산의 자신 천도에 근거한 타인 천도의 염원이기도 한 것이다. 천도는 생전에 자기가 자신을 천도하는 것이 제일이므로,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평소에 자기 마음을 밝고 조촐하고 바르게 길들여, 육식이 육진 가운데 출입해도 물들고 섞이지 아니할 정도에 이르면 남을 천도하는 데에도 큰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자기 생전에 자기의 천도를 마쳤다 할 것이다."(〈대종경〉 천도품 38장)하시며 생전에 자기 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육진의 경계를 당하여 육식의 마음을 맑고 밝고 바르게 길들이고 길들여 성품의 본래자리로 천도시켜야 하는 것이다.

〈성가〉 149장은 천도 의식을 거행할 때의 축원 노래이다. 천도의식은 마치 응원과도 같다. 응원을 해주면 평소 실력의 120%를 실현하기도 하듯이 생사의 경계를 당해서 영가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이 천도의식이다. 평소 수행이 있는 영가는 생사의 길에서 더욱 잘 건너갈 것이고 수행이 미진한 영가에게도 정신을 차리게 하는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가〉 149장은 천도의식에 있어 천도를 축원하는 대표적인 노래다.

청정한 서원일념 끝까지 챙기소서
천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참 열반'에 드는 것이다. 참 열반은 성품자리에 드는 것이며 진정한 열반은 무명업장을 다 놓아버리고 청정한 성품에 안주하는 것이다.

〈세전〉 '열반에 대하여'에 "열반이라 함은 우리말로는 두렷하고 고요하다는 뜻인 바, 두렷하다 함은 우리의 자성이 원래 원만 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자리임을 이름이요, 고요하다 함은 우리의 자성이 본래 요란하지 아니하고 번뇌가 공한 자리임을 이름이니, 사람이 이 자성의 도를 깨쳐서 자성의 원래를 회복함을 열반이라 하며, 그 자리를 단련하여 언제나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고 극락을 수용함을 일러 열반락을 얻었다 하나니라"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어서 열반은 자성의 원래를 회복함이니 생전에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는 열반락을 수용하는 중에 생사의 경계에 처해서도 참다운 열반을 얻자고 부연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열반의 참 낙을 얻어서 언제나 한결같이 원적을 수용하는 이는 극히 적으므로 불가에서 형식상 사람이 죽는 것을 열반이라 하여 왔으나, 같은 열반 가운데도 근본 진리를 잘 체득하여 실지로 열반에 드는 이도 있고 색신은 비록 열반하였으되 망연(妄緣)은 길이 쉬지 아니하여 참다운 열반을 얻지 못하는 이가 많으므로, 공부하는 이들이 평소부터 이 열반의 도를 잘 단련하여 생전에도 열반락을 잘 수용하는 동시에 색신이 열반하는 때를 당하여 참다운 열반을 얻자는 것이니라."

〈정전〉 의두요목 중에서 '세존이 열반에 드실 때에 내가 녹야원으로부터 발제하에 이르기까지 이 중간에 일찍이 한 법도 설한 바 없노라 하셨다'는 뜻이 이 청정한 성품자리에 들었다는 것이다. 열반은 생물학적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멸을 초월한 성품자리에 들었다는 뜻까지 포함한다.

성품자리에서의 열반은 성품의 변화(性變)일지언정 생사는 아니다(〈대종경〉천도품 8장). 마치 출렁이는 파도가 바닷물 자체이며 바닷물의 작용이 파도이듯이, 성품의 바다 차원에서 보면 생사의 파도도 성품 바다의 발현인 것이다. 즉 출렁이는 생사의 파도도 바닷물인 성품의 작용이요 변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평소에 적공을 하여 이 청정한 성품자리로 이사를 해야 이것이 진정한 천도이다. 착심만 여의면 성품의 기운을 타는 격이므로 우리는 영가를 위해 '착심을 여의도록' 응원하고 또 기운을 북돋아 주어야 할 것이다.

조정근 교무의 〈성가〉 149장은 천도 과정에 있는 영가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착심을 여의도록 큰 힘을 주소서'라며 축원하는 응원의 기운을 보내자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면 착심으로 묶여있는 '천업이라도 돌파'할 정신을 차리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천도에서 중요한 것이 부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니, '부처님 인도하심 오롯이 받으소서'라 노래하고 있다. 천도에는 법신불의 위력과 당시 법사의 도력과 기념주의 정성 및 대중의 합력이 요청된다(〈대종경〉천도품 33장). 특히 소태산 부처님의 법문에 따라 정신을 차리는 것이 제일 중요한 핵심이 된다. 소태산 부처님의 '열반전후에 후생 길 인도하는 법설'에 정신을 차리는 것이 제일 요청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요청에 따라 끝내는 '번뇌를 끊으시고 업장을 녹이소서'라고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착심을 여의어 번뇌를 끊고 업을 초월하는 업장을 녹여 '청정한 서원 일념'을 끝까지 챙기라는 것이다. '청정한 서원일념' 즉 청정 일념과 서원 일심에 유념하라는 당부다.

정산종사는 천도의 가장 큰 요건이 바로 서원 일심과 청정 일념으로, 욕심을 떠나 마음을 발함이 서원이요, 밉고 사랑스러운 데 끌리지 아니하면 청정해 진다고 했다(〈정산종사법어〉생사편 8장). 즉 애착은 사랑의 집착이요 원착은 미움의 집착이며 탐착은 욕심에 집착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애증과 욕심을 다 놓는 것이 바로 청정 일념이요 청정한 가운데 발원함이 서원 일심인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사람의 영식이 이 육신을 떠날 때에는 처음에는 그 착심을 좇아가게 되고, 후에는 그 업을 따라 받게 되어 한없는 세상에 길이 윤회하게 된다"며 "그 윤회를 자유하는 방법은 오직 착심을 여의고 업을 초월하는데 있다" 법문했다. 이처럼 먼저 착심을 놓아버리면 해탈자재한 자성이 드러나 새 인연을 잘 선택하게 되며, 다음으로 업 경계에 끌려가지 않으면 자성이 눈앞에 역력히 드러나서 업에 물들지 않게 되어 결국 한 생각 일어나고 멸하는 생사윤회에서 자유하게 되므로, 이 자리가 바로 열반의 주인공이 거주할 천도의 자리라는 것이다.

원음 산책
〈성가〉 149장의 반주를 들으면 들을수록 포근한 감이 든다. 한 품 한 품 안아주며 감싸주는 그러면서 따스한 격려가 깔려있는 느낌이 있다. 꾹 꾹 찍어주는 박자가 있는데 마치 부모가 자녀의 첫 여행에 이것저것 챙겨주며 당부하는 모습 같다. 길 떠나는 자식을 바라보며 멀어져가는 자식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는 노(老) 부모의 심정이 떠오른다. 느린 템포 속에서 간절히 기원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그려진다. 전체적으로 어딘지 슬프면서도 굳건한 의지를 내미는 기분이 든다.

〈성가〉 149장은 노랫말을 잘 음미하면서 불러야 감흥이 있을 것이다. 4/4박자라도 너무 처지지 않게 그러면서도 엄숙함이 있도록 정박으로 부르면 좋을 듯하다. 특히 붓점의 강조점을 살려서 운율의 리듬감을 탈 때 엄숙하면서도 굳건한 의지가 살아날 것이다. 〈성가〉 149장은 김규환의 작곡으로 원기75년(1990) 교화부에서 성가로 제정된다.

▲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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