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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교화 이야기] 항조우에서 교화의 씨앗 맺다 2
[해외교화 이야기] 항조우에서 교화의 씨앗 맺다 2
  • 강혜전 교무
  • 승인 2017.09.15
  • 호수 18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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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혜전 교무/중국교구 항조우개척

"하늘 위에 천당이 있고, 하늘 아래 항조우가 있다"고 할 만큼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고 있는 항조우는, 송나라 때 고려와 활발하고 수준 높은 문물교류를 했다.

내가 10년 동안 꾸준히 교류해 왔던 경산사는 송나라 때 간화선 수행을 제시한 대혜종고 선사가 주재했던 사찰이며, 당대 5산 10찰 중 첫 번째 사찰이다. 소동파가 재임시절, 서호 주변의 사찰을 순례했는데 방문한 곳만 365개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중국에서는 불교문화와 뗄 수 없는 차 문화 교육기관이 모두 항조우에 집중돼 있다.

이러한 중국 항조우에서 절강대학 기숙사 생활을 9년(2007년 3월~2016년 2월)동안 했다. 농업학원 차학과에서 3년 반과 인문학원 고전문헌학과에서 5년 반을 공부하면서 불연·학연·차연(茶緣)으로 대부분 현지인들을 중심으로 인맥이 형성됐다.

이런 인맥을 형성할 수 있었던 데는 차와 불가라는 두 가지 공통점이 그 인연의 끈을 강하게 했다. 난 그들에게 선배이자, 사매(師妹), 노사(老師),선생, 교무 등으로 불렸다. 물론 교무란 호칭은 불심이 아주 강한 사람들에게만 불리는 비율이 아주 낮은 경우였다. 하지만 10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지인들은 '교무'란 언어가 갖는 문화를 완전히 파악을 하고 있다. 특히나 10년이 지나니, 현 시점에서 내가 한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법신불 사은이 곳곳에 그러한 인연을 배치해 둔 것처럼 불연과의 인연이 깊고 넓어지고 있다.

▲ 강혜전 교무(중앙)가 2014년 항조우 중국차엽학회에서 한국 차문화 교육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두 번째 해외개척 교화이야기를 쓰다 보니, 학교생활을 했던 지난 9년 동안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자세히 펼쳐진다. 최근에는 '나에게 그런 어려운 시절이 있었나?'할 정도로 지난 시절이 아주 까마득한 기억 속에서 맴도는 느낌이다.

지난 9년은 앞에서 언급한 많은 인연들이 자연스럽게 인맥으로 구축되어지는 것과 관계없이, 내 안에서 9년의 세월은 한마디로 '어두운 긴 터널을 걷는 느낌'이었다. 간혹 나는 물었다. 바깥 햇빛은 언제나 나에게 손길을 내밀어줄까? 건강을 극복한 과정, 학문에 대한 버거움, 미래에 대한 답답한 느낌 등을 심리적으로 원만하게 헤쳐 나가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모두가 공감해 준다면 완전 귀국하고 싶은 마음이 자주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많은 인연이 형성된 것은 법신불 사은의 호념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사은이 '강혜전이 이러한 고난을 이겨나가야만, 중국에서 살아갈 수 있다'라는 시험에 들게 했다라고 생각된다. 내가 이곳에서 순수 종교인을 고집하며, 지역 정서와 합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몇 가지 배경이 받침이 되어서 가능했다고 본다.

첫째는 나보다 더 나를 위해 기도를 해 주시는 스승님들과 도반 그리고 가족들의 힘이다. 둘째는 신기독을 철저히 중시여기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셋째는 유불도삼가(儒佛道三家) 융화사상과 차의사상을 결합하면서 생활다도와 생활불교를 강조했던 것이 통했던 것이다. 넷째는 이곳 항조우에서 만난 인연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보살핌이다.

다음 호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네 가지 은혜를 바탕으로, 다도문화를 통한 학술교류, 불가 문화와의 교류 등의 활동을 통해 항주개척교화의 잔잔한 미래에 대해 쓰고자 한다.

항조우개척교화 후원계좌 : 우체국 400846-01-004404 (재)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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