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논어〉의 안연편에는 사마우가 사람들은 형제가 있는데 나만 혼자인 것 같다는 말에 공자의 제자인 자하가 그런 걱정 말라며, "군자가 공경하여 실수가 없고, 사람을 사귀는데 공손하고 예의를 갖추면 사해 내의 모두가 형제라 하니 군자가 어찌 형제가 없음을 근심하겠는가"라고 대답했다. 사해는 이 세계 전체를 말한다. 동포는 같은 부모를 가진 동기(同氣), 즉 형제와 자매를 말한다. 따라서 이 땅에 사는 같은 민족이나 뜻을 같이 하는 모든 사람을 사해형제 또는 사해동포라고 부른다.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인간은 같은 종으로서 피부색과 성격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면에서는 동일하다. 인류학적으로도 인간은 수백만 년 전에 같은 조상으로부터 분화되었다. 진리적으로 볼 때도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은 법신불의 화신이다. 정산종사는 동기연계를 설명할 때, 모든 인종과 생령이 근본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라고 한다. 말 그대로 시방일가 사생일신인 것이다.

동포은에서는 이 지구 위 모든 존재는 자리이타로써 서로 도움이 되고 피은이 되었다고 한다. 자리이타는 원래 대승불교에서 나온 용어다. 자기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부파불교에서 자신만의 열반을 추구하던 것을 비판하며,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도의 실천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깨달음과 자비, 자각각타, 자타일여 각행원만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깨달음의 사회화도 같은 의미이다. 이러한 당위를 넘어 동포은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연기적 관계의 원리인 은혜가 사회와 자연계를 유지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존재의 존재 형태가 바로 동포은이다.

그런데 이러한 동포은을 알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하는 욕망에 빠져들 때, 인간은 갈등과 상극의 세계, 심지어는 전쟁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오늘날 목격하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석존은 전사마을의 촌장으로부터, 전력을 다해 싸우다 죽은 영혼이 환희하는 하늘사람의 무리에 태어난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잘못된 견해이며, 지옥이나 축생의 두 길밖에 없다고 했다.

강대국인 코살라국 비류왕이 어릴 때 당했던 모욕을 갚기 위해 자신의 외조부 나라이자 석존의 조국인 카필라국을 무자비하게 정복했다. 그 살육의 과보로 비류왕 자신도 7일 만에 홍수로 죽고 왕궁도 벼락으로 불타버렸다. 실제 카필라국의 석가족은 뛰어난 활솜씨가 있어 이길 수 있었지만, 전쟁에서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하는 전술을 구사함으로써 정복당했다. 원한을 끊는 자비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인과에 의한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것은 갚을 자리에서 쉬는 것과 자비와 관용 외에는 없다. 최근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석존의 전생담에는 담마(Dhamma, 진리)왕이었던 그가 무력보다 진리와 도덕으로써 적을 정복했다고 한다. 무자비한 폭력전쟁을 반성한 아쇼카왕이 불교에 귀의해 비폭력과 자비의 통치를 실시한 것도 이 가르침 때문이다. 석존은 적의는 적의에 의해 멈추지 않으며, 그것을 멈추게 하는 것은 무적의(無敵意) 뿐이라고 설한다. 결국 전쟁을 사전에 막는 길은 우리가 은혜를 주고받는 자리이타의 동포은적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는 길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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