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상 작가/북일교당
심장이 동작을 정지하고 허파가 숨을 내보내지 않을 때를 일러 '사망했다'고 한다. 마음이 온전히 몸을 벗은 상태다. 만물은 몸에 생명을 의탁하고 있다. 그것이 생명의 형식이다. 개는 개의 몸을 빌어 존재하고 소나무는 소나무의 몸을 빌어 존재한다. 상사화는 상사화의 몸을, 바퀴벌레는 바퀴벌레의 몸을, 인간은 인간의 몸을 빌어 삶을 유지한다. 몸이 생명의 형식이라면 마음은 생명의 내용이다.

몸이 마침내 그 형식을 다하고 나면, 마음은 존재할 집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일러 죽음이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 있는 다섯 개의 강을 건너야 명계(冥界)로 갈 수 있다고 하였다. 슬픔과 비통의 강인 '아케론', 탄식과 비탄의 강인 '코키투스', 불로 영혼을 정화하는 강인 '플레게톤', 본디 아케론 강에서 일하던 뱃사공 카론이 망자를 건네주는 증오의 강 '스틱스', 망각의 강 '레테'가 바로 그 다섯 개의 강이다.

레테의 강을 건너면서 망자는 강물을 한 모금씩 마시게 되는데, 강물을 마시면 과거의 기억은 깨끗이 지워지고 전생의 번뇌를 잊게 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유식(唯識)사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스 신화의 레테의 강은 아뢰야식을 건너는 것이 된다. 망자의 전생 기억은 지워지는 게 아니라 아뢰야식에 저장된다. 저장되는 것은 사실 기억이 아니라 마음공부의 성적이다. 그 성적에 따라 다생(多生)의 내용이 결정되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죽을 때 유언으로 두 손을 밖으로 내민 채 묻어달라고 했답니다. 비어 있는 두 손만 남기고 대왕은 흙에 묻힌 것이지요. 어제는 땅을 밟고 다녔지만 오늘은 흙에 덮여 있는 겁니다. 살아 있을 때에는 모든 땅이 대왕의 것이었지만 그가 죽음을 맞이하자 두 평의 땅만 허용된 겁니다. 흙 밖으로 나와 있는 그의 두 손은 '빈 손'을 상징하는데, 과연 '빈 손'이기만 할까요?" "소태산은 말했습니다. 한 손에는 마음공부한 것이 들려 있고, 다른 손에는 복 지은 것이 들려 있다고요. 빈 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무님의 설법을 들으며 8월 초에 돌아가신 장모님에 대해 생각했다. 장례식장이 서울인데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교무님이 직접 오셨다. 장례기간 내내 교무님은 정성으로 기도와 독경을 해주시며 영가가 '돌아가는' 길을 인도해주셨다. 영가의 비어 있는 두 손에 들린, 마음공부 한 것과 복 지은 것이 비록 부족하다 할지라도 교무님의 정성스러운 기도와 독경으로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초재부터 종재에 이르기까지 천도재도 지극정성으로 인도하여 원불교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천도재를 지낸후로 가족 중에 스스로 교당을 찾아가겠다는 사람이 곧 나올 것만 같다.

사람이 몸이라는 옷을 벗어버리면 허공법계에 마음공부한 것과 복지은 것이 남아 있게 된다는 교무님의 설법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살아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영가에게도 마음공부는 필요하다. 영가의 마음공부가 바로 천도재다. 이것이 오늘의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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