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상 교도/춘천교당,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28년전 금지된 DDT의 발견,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
국가나 기술 현실에 맞는 농업 기술 연구 개발 필요

얼마 전 달걀에서 농약이 검출되었다 하여 많은 농가의 닭이 매몰 처분됐다. 농약이 검출된 달걀 생산 농가의 토양에서 DDT가 검출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였다.

DDT는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이라는 유기 염소 계열의 살충제인데, 사실 DDT는 인축에 대한 독성 위험이 낮고 안정성이 높은 살충제로 알려져 있었다. 더욱이 자연적인 분해가 느려 효과가 오래 지속되므로,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중 야전의 군인들에게는 상비품이었고, 일반적으로도 많이 사용되는 해충 방제약이었다.

수십년전만해도, 흰색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학교 입구에서 흰 가루를 온몸에 범벅이 되도록 살포했다. 그 때만 해도 몸에 이가 없는 이가 드물었고, 머리에도 서캐가 우리의 피를 빨고 있었으며, 집에는 벼룩이며, 빈대가 우리를 괴롭혔다. 지금은 이런 해충들이 거의 없어진 것은 DDT 덕분이다. 특히 아프리카 등지에서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모기 방제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이런 DDT가 사라지게 된 것은 1962년 레이첼 칼슨의 저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발간되면서 부터다. 숲 속의 새 여러 마리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그 이유가 농약의 중독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무분별한 농약의 사용이 계속되면, 숲 속의 새들이 사라지게 되어 더 이상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침묵의 봄을 맞게 되리라는 경고였고, 이 농약이 바로 DDT이었다. 그 후 여러 가지 농약들이 암을 유발할 수 있음이 알려졌고, 1970년대에 들어와 이들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9년 DDT 등 유해 농약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그런데 28년 전에 금지된 DDT가 우리의 먹거리인 달걀과 농장의 토양에서도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DDT의 반감기는 토양에서는 2-15년이다. 그러니, 1mg의 DDT가 토양에 들어갔다면, 다른 곳으로 쓸려 나가지 않았다면, 30년 후에도 들어간 양의 1/4인 0.25 mg의 DDT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렇듯이 환경에서는 전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부작용을 나타낼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친환경 농업의 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도시 소비자들 특히 어린아이를 기르는 어머니들의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나는 지금 대학에서 은퇴하여 KOICA와 한국농촌공사의 해외 원조 사업 등을 통하여, 개발도상국들의 농업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몽골, 모잠비크, 캄보디아 등의 농업 개발에 참여하면서 우리나라가 50년 전에 겪은 갈등을 그대로 본다. 이론적으로는 농약과 화학 비료의 사용을 줄여야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몽골이나 모잠비크의 드넓은 초원을 개간해 농사를 지으면 가난도 없앨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어려운 이유는 토양, 잡초, 해충 그리고 병과의 싸움에 있다.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적절한 양의 비료나 농약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히 화학비료 없는 유기농업이자, 무농약, 친환경농업을 한다. 우리나라의 50년 상황과 비슷한 상태로, 현재 국내 친환경농업 기술을 바로 적용시키기 힘들다.

이런 현실에서 현장의 나와 같은 농업 기술 전문가들은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현실에 맞는 농업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 개발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종경〉에서 한 제자 교중의 과원을 맡음에 매양 소독과 제충 등으로 수많은 살생을 하게 되는지라, 마음이 불안하여 그 사유를 대종사께 사뢰니,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과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사심 없이 공사에만 전념하라. 그러하면, 과보가 네게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만일 이 일을 하는 가운데 조금이라도 사리를 취함이 있다면 그 과보를 또한 면하지 못할 것이니 각별히 조심하라" 하셨던 교단품 13장의 말씀을 되새기며, 건강한 흙 살리기의 미래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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