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개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보다 화창한 날씨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반대이다. 날씨가 화창하면 마음이 울적하고 비가 오면 기분이 좋다. 아마도 출가 전 어린 나이 때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그러한 심리가 생긴 듯하다. 화창한 날씨에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따뜻한 햇볕을 마음껏 만끽하지 못함에 괜스레 마음이 우울했다. 그런데 비가 오면 모두가 밖에 나가기를 꺼려하니까 위안이 되고 가만히 앉아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다. 생각해보면 남들과 함께 하지 못함에 시기심이 생겨 그런 것 같다.

가을을 흔히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한다. 천고마비는 가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으로 곡식을 수확하고, 열매가 무르익어 먹을 것이 풍성하고 바람이 선선하고 햇빛이 따사로워 날씨가 아주 좋은 계절을 의미한다. 내가 살고 있는 광주 예술의 거리는 만연한 가을이면 축제의 향연이 펼쳐진다. 특히 주말이면 거리마다 공연과 행사들로 인산인해다. 밤까지 시끌벅적한 광주의 중심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또 마음이 울적해진다. 주말이 제일 바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함께 나가서 즐기지 못함에 시기심이 발동하는 것이다.

수행자들에게 가을은 적공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하는데 나에게 가을은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고, 놀고 싶은 계절이다.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개미가 아니라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만을 즐기는 베짱이에게 더 마음이 향하는 것은 왜일까?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업의 성공과 파괴의 원인이 그 사업의 주인들의 존심(存心)과 방심(放心)에 달려 있나니, 시종이 한결 같이 꾸준한 정성심과 주의심을 놓지 않는 것이 존심이라 이것이 성공의 원인이요, 좀 고생이 된다하여 열의가 식거나 좀 오래 되었다하여 함부로 하는 것이 방심이라 이것이 파괴의 원인이니라. 부처님 사업을 하고 부처될 공부를 하는 우리는 부단한 정성과 끊임없는 주의심을 놓지 말고 영원히 퇴전치 않는 큰 성공을 거두도록 힘써야 할 것이니라."(〈정산종사법어〉 공도편 8장)

'방심은 금물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의 위치와 내가 하는 일을 간과하고 한낱 밖의 경계에 흔들려 베짱이가 되려고 하는 나의 모습을 보니 아무리 수행을 하여도 묵은 습관과 기질은 토를 떼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수행하기 좋은 계절에 나는 놀고 싶은 욕망에 더 매달리고, 시기심에 비가 오기를 바라기도 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지 알면서도 익숙함에 나태하고, 안일함에 빠져서 방심하며 살고 있었다. 오늘의 바뀌는 내 마음은 시기심이 아닌 방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시종이 한결같은 존심으로 세상을 대하면 날씨에 상관없이 경계에 흔들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전진해 나갈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 베짱이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오직 정성심과 주의심으로 다가올 추위에 대비하여 편안하고 따뜻한 겨울을 맞이한 개미처럼 이 좋은 계절을 시기하고 한탄하며 그냥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서 적공의 축제를 펼쳐 깨달음의 기쁨과 환희의 폭죽을 팡팡 터트려야 하겠다.

/광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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