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응주 교무/법무실
부처님 법으로 무상대도를 성취하라
닦을것도 증득할 것도 없는 경지를 깨치라

佛言- 夫人離三惡道호대 得爲人難이요 旣得爲人호대 去女卽男難이요 旣得爲男호대 六根完具難이요 六根已具호대 生中國難이요 旣生中國호대 値佛世難이요 旣値佛世호대 遇道者難이요 旣得遇道호대 興信心難이요 旣興信心호대 發菩提心難이요 旣發菩提心호대 無修無證難이니라.

"부처님 말씀하시되 삼악도를 떠나서 사람 몸 받기가 어렵고 사람 몸을 받는 중에도 남자 되기가 어렵고 비록 남자가 되었을지라도 육근이 완비하기가 어렵고 육근이 완비 하였을지라도 좋은 국토에 나기가 어렵고 좋은 국토에 났을지라도 부처님 세상을 만나기가 어렵고 부처님 세상을 만났을지라도 직접 부처님 회상에 들어오기가 어렵고 부처님 회상에 들어왔을지라도 신심 내기가 어렵고 신심을 내었을지라도 보리심을 발하기가 어렵고 보리심을 발하였을지라도 무상대도의 성품을 보기가 어렵나니라."

〈사십이장경〉 36장은 사람이 삼악도를 벗어나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나서부터 무상대도를 깨닫기까지의 과정 중 아홉가지의 어려운 길을 자상하게 설명한 것이다. 그 아홉가지를 요약해보면 건강한 남자의 몸으로 좋은 나라에 사람으로 태어나 부처님의 법을 만나 회상에 입문하여 신심을 일으켜 성불제중의 서원을 세워 무상대도를 성취하는 일이다. 이 아홉까지를 손꼽아보면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일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희유한 일인지를 안다면 진리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인리삼악도 득위인난(夫人離三惡道 得爲人難)은 대범 사람이 삼악도를 떠나 사람의 몸을 받기 어렵다는 말씀이다. 삼악도란 지옥, 축생, 아귀의 세계를 말한다.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와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축생과 음식을 보면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다고 하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아귀의 세계가 그것이다. 육도중 사람의 몸을 받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수심결〉 37장에서도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눈 먼 거북이 나무를 만나고(盲龜遇木), 작은 겨자에 바늘을 던짐(纖芥投鍼)과 같이 어려운 일이라고 하셨다.

기득위인 거여즉남난(旣得爲人 去女卽男難)은 사람이 되었으되 여자를 떠나 남자가 되기 어렵다는 말씀이다. 이 법문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불교에서는 남자의 위상을 여자보다 높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원불교에서는 소태산 대종사 당시부터 남녀간 불합리한 차별제도를 없애려고 노력하였으며 남녀권리동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여자와 남자를 동등하게 대우하는 풍토가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기득위남 육근완구난(旣得爲男 六根完具難)은 남자가 되었으되 육근을 완전히 갖추기가 어렵다는 말씀이다. 즉, 장애없는 완전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기가 어렵다.

육근이구 생중국난(六根已具 生中國難)은 육근을 모두 갖추어 태어났으나 좋은 나라에 태어나기가 어렵다는 말씀이다. 아무리 몸과 마음이 건강하여도 변방이나 후진국, 열악한 자연조건을 가진 나라에 태어난다면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中國)이란 나라 이름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좋은 나라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

기생중국 치불세난(旣生中國 値佛世難)은 환경이 좋은 나라에 태어났더라도 부처님 세상에 태어나기가 어렵다는 말씀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라에 살더라도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이치를 알아 깨쳐나가는 부처님이 계신 세상에 태어난다면 더 수월하게 진리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기치불세 우도자난(旣値佛世 遇道者難)은 부처님 세상에 태어났으나 부처님의 법을 가르치는 스승과 회상을 만나기 어렵다는 말씀이다. 부처님이 계신 땅에 태어났다하여도 나를 정법으로, 성불의 길로 이끌어주는 회상에 참예하여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지 못한다면 이 또한 박복한 일이다.

기득우도 흥신심난(旣得遇道 興信心難)은 부처님의 회상에 들어왔어도 신심을 일으키기 어렵다는 말씀이다. 봉사 문고리 잡는 형상으로 어쩌다가 회상에 입문하였지만 정법과 스승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신심을 일어내지 못한다면 이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기흥신심 발보리심난(旣興信心 發菩提心難)은 신심을 일어냈으나 보리심을 발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이다. 보리심이란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으로써 널리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上求菩提 下化衆生)이다. 불법에 대한 신심을 일으켰지만 그것을 자신이 체화해서 완성하려는 굳은 서원을 세우지 못하면 그 신심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기발보리심 무수무증난(旣發菩提心 無修無證難)은 보리심은 일으켰지만 닦을 것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는 경지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말씀이다. 지금까지 앞에서 설명한 것의 최종 결론은 닦을 것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는 경지를 깨치는 것이다.

이 아홉가지 어려움을 하나하나 새기면서 '나는 지금 어떤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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